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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제로페이, 선의가 지나치면…

중앙일보 2019.02.15 00:20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개인적으로 제로페이가 나쁘지 않은 결제수단이라고 본다. 귀찮게 지갑 챙기지 않고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데 마다할 것 없다. 첫 경험이라 약간의 용기는 필요했지만, 실제 써보니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앱을 열고 QR코드를 스캔한 뒤 비밀번호와 금액을 입력하면 끝이다. 향긋한 커피와 함께 이만하면 ‘얼리 어답터’라는 은근한 자부심까지 즐겼다. 여기에 높은 카드 수수료로 시달리는 소상공인을 도왔다는 뿌듯함까지.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드는 의심. 과연 이 뿌듯함에 근거가 있는 걸까.
 

‘수수료 부담 덜기’ 취지부터 애매
무리한 추진으로 의도까지 의심

제로페이의 출발은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 부담 덜어주기’라는 선의다. 그러나 실제는 조금 다르다. 연 매출 10억원 이하의 개인사업자들은 카드나 현금영수증 매출액의 1.3%를 돌려받는다. 세무용어로 ‘부가가치세 신용카드 등 매입세액 공제’라고 한다. 올해부터 축소하려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오히려 공제한도액을 늘려 2021년까지 연장됐다. 이를 고려하면 매출 10억원 이하 사업자의 실질적인 카드 수수료 부담은 -0.5%~0.1%다. -0.5%? 매출 3억원 이하 사업자는 오히려 카드 매출액의 0.5%를 ‘보너스’로 돌려받는다는 의미다. 이 구간 카드 수수료는 0.8%인데, 공제율은 1.3%이기 때문이다. 제로페이의 선의가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겐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제로페이를 쓰면 소상공인들은 카드 수수료는 안 내면서 세액 공제는 그대로 받을 수 있다(제로페이는 현금영수증이 자동 발급된다). 꿩먹고 알먹고다. 관건은 실제 소비자들이 얼마나 사용할 지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제로페이가 국내 결제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시장의 공포’를 이렇게 달래고 있다. “국내 결제시장에서 소상공인의 비중은 20% 이내(약 190조원)다. 제로페이는 5년 후 소상공인 결제 비중의 10%(약 19조원)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달성을 가정할 경우 제로페이는 전체 결제 시장의 2% 수준이다.” 거칠게 해석하면, 제로페이가 제대로 성공하면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이 평균 10% 줄어든다는 뜻이다. 매출 5억원 자영업자가 1년에 50만~60만원 혜택을 보는 셈이다. 나쁠 거야 없지만, 자영업자가 희망을 걸 정도는 아닌 듯하다.
 
중앙부처 장관의 목표는 이렇게 ‘겸손’한데,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만만하다. “제가 시작해서 잘 안 된 건 거의 없었다. 작은 자영업자 가게들이 한 달에 몇십만원씩 혜택을 볼 수 있는 일인데 같이 안 할 이유가 없다.” 잠재적 대권 주자다운 자신감과 시민운동가 출신다운 연대 의식이 좋다. 하지만 무리수가 따르니 문제다. 가맹점 목표량을 할당해 공무원을 동원하고, 세금을 써서 유치수당까지 지급하고, 특별교부금까지 쥐고 흔들며 자치구를 움직인다. 무리한 선의는 의도를 의심받는다.
 
제로페이 같은 결제 플랫폼은 경제학 용어를 빌리자면 ‘양면시장’ 상품이다. 한편으로 가맹점을 모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용자를 늘려야 한다. 양면시장을 설명할 때 흔히 드는 비유가 나이트클럽이다. 여자 손님 술값을 면제해주는 척하지만, 실제는 남자 손님 술값에 얹는다, 소비자 혜택을 늘린다며 가맹점으로부터 높은 수수료를 매기던 카드사들과 다를 바 없다. 이게 양면시장의 특성이지만, 이를 깨보자고 나온 게 제로페이다. 지금의 제로페이는 남자 손님도, 여자 손님도 아닌 나이트클럽 주인이 생색내며 술을 사는 격이다. 그런 구조가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나이트클럽 주인이 내는 술값이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설픈 선의가 현실의 문제를 더 꼬아 버린 경험은 지금도 충분하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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