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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는 즐거운 설? 일본서 인터넷 뒤져보니

중앙일보 2019.02.14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5)
명절 풍경이 그리워 인터넷 기사를 뒤졌지만, 한복을 입고 설을 지내는 사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진은 설 연휴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뉴시스]

명절 풍경이 그리워 인터넷 기사를 뒤졌지만, 한복을 입고 설을 지내는 사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진은 설 연휴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뉴시스]

 
2월 5일은 한국의 ‘설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한국의 설과 추석 풍경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인터넷 기사를 뒤졌다. 정겨운 풍경을 보고팠던 나의 기대는 어김없이 깨진다. 우선 한복 입고 설을 지내는 사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강렬하게 들어오는 다섯 글자 ‘명절증후군’. 이 말을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복작대고 정겨운 설 풍경이 사라지고 여자도 남자도 스트레스를 안게 되는 명절이 돼 간다는 이야기다. 과연 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명절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즐거운가. 부모가 즐겁지 않은데 아이들이 행복할까. 조상은 자손들이 골치 아파하며 올린 제사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을까. 먹기도 전에 체할 것 같다.
 
새해 초하룻날 친척들끼리 신년회
일본 사람들도 연말연시를 바쁘게 보낸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가족을 지켜줄 신을 마중하기 위해 대청소를 한다. 새해가 되면 친척들이 모여 신년회를 한다.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집의 며느리는 식사와 술안주를 만들어 내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12월 31일. 친구의 메일 내용이다.
“오세치 요리(정월 요리)를 만드느라 종일 주방에 서 있어서 다리가 뻣뻣하다. 초하룻날은 우리 집에서 시댁 신년회를 하거든. 20년 넘게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을 가져다가 먹었는데 올해는 어머니가 입원하셔서 처음으로 만들어 봤어. 너무 힘드네. 친정어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이 모자랐다고 반성하게 된다. 오세치 요리가 이렇게 번거롭고 힘드니 사다 먹는 가정이 많은 것도 이해가 돼.”
 
정월 요리 신년회 상차림. 친구가 직접 만든 정월 요리로 준비한 신년회 상차림이다. 처음 만들어 봤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솜씨이다. 친정어머니가 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사진 양은심]

정월 요리 신년회 상차림. 친구가 직접 만든 정월 요리로 준비한 신년회 상차림이다. 처음 만들어 봤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솜씨이다. 친정어머니가 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사진 양은심]

 
이 친구 집은 연말이면 친척들이 모여 찰떡도 빚는다. 일본의 전통을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 집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남편이 외동아들이다. 시아버지 쪽으로 친사촌도 없다. 대를 이을 자손은 우리 두 아들뿐이다. 명절 풍경이 그야말로 쓸쓸할 정도다. 시아버지, 남편, 나, 아들 둘, 이렇게 다섯 식구가 새해를 맞이했다. 이 모습에서 수십 년 뒤 한국의 명절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명 이상의 자식을 둔 집이면 그나마 친척이라는 것이 유지되겠지만 외동아들, 외동딸인 집이라면 명절에 모일 친척도 없을 것이다. 고모나 이모 등의 명칭도 사전 속의 단어가 되어 버릴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머지않아 설과 추석은 조촐한 가족 모임이 될 것이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을 발견한 이래 요 몇 년 동안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니 그 답 또한 다를 것이다. 설과 추석을 없애버리면 며느리가 행복해질까. 명절을 며느리를 친정에 보내는 날로 하면 해결될까. 결혼한 딸이 오는 대신 며느리를 흔쾌히 친정으로 보낼까. 외동아들 외동딸 부부라면, 양가 부모가 젊은 부부 집에 모이는 것은 어떨까.
 
결혼식 때 서로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떠올려 보았으면 한다. 서로 잘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문제는 관계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얼굴을 맞대는 것도 고통일 것이다. 좋은 관계는 일방통행으로는 만들 수 없다.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을 모시고 차례를 지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준비 단계에서 고생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옛날에는 며느리가 많아 다 모여 일을 하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며느리도 혼자이거나 맞벌이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애 키우면서 직장 일을 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전쟁통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 처리만으로도 벅차다. 손이 줄어든 만큼 남녀를 불문하고 가족 모두가 손을 모아야 한다.
 
제사가 없는 나라를 부러워하거나 할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가 된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성립하는 가정 화목은 진정한 화목이 아니다. 죽어가면서 ‘고마웠다’고 할 일이 아니다. 지금 ‘고맙다’고 표현하고 말 만이 아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명절증후군' 없는 훈훈한 친척 모임 되려면
정월이면 일본에서도 매해 ‘국민 대이동’이 펼쳐진다. 도쿄 출신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고 섭섭해하기도 한다. 일본이 친척 간의 왕래가 없어 보이는 것은 애초에 교류할 친척이 없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집이 그렇다. 10여 년 전 시아버지와 그 형제자매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에서 모이던 친척 모임을 없앴다. 그 후 장례식 외에 교류가 없어졌다. 그러한 삶을 살아본 경험에서 볼 때 친척 모임이 없는 것도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아 쓸쓸하다.
 
장수 시대를 넘어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조상의 의견을 들어볼 수 없으니 살아있는 자손을 위해 연장자들이 이야기를 트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싶다. 1년에 두어 번 친척들끼리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전통. 이 자체로 얼마나 훈훈한 일인가. 발언권 없는 저세상의 조상을 나쁜 사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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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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