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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남북 행사에 25억원 배정했는데…북한은 무응답

중앙일보 2019.02.14 06:00
정부가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북한의 참여가 필요한 공동사업에 예산 25억원을 책정했지만 북한의 무관심으로 헛심만 쓸 처지다. 25억원은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가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사업을 취합한 결과다. 정부는 이들 사업의 세부계획 등을 북한에 제의했지만 사업 실시 시기가 임박한 지난 13일까지 별다른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한완상 위원장이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한완상 위원장이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진위가 최근 작성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중앙 및 지자체 핵심사업 추진계획서’에는 이번 100주년 기념행사에 북한을 참여시키는 방안도 담겼다. 전체 104개 사업 중 8개 사업이 북한과 연계돼 있고 이 중 7개 사업은 북한의 참여가 없으면 추진이 불가능하다. 100주년 기념사업에 총 655억원이 투입되는데 이같이 북한 참여가 필수적인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24억9900만원에 이른다.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조성’ 항목이 대표적이다. 이 항목의 4개 사업 모두 남북 공동 추진을 전제로 계획됐다. 이중 통일부가 주관하는 ‘3·1절 100주년 남북공동행사’에는 민족대축전 개회식과 공동 음악회를 여는 데 6억원이 배정됐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 공동선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한 것을 근거로 기념사, 선언문 등을 하나의 행사에서 발표하고 남북 같은 수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공연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통일부는 또 6억원 예산을 잡고 ‘한반도 평화대장정’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오는 8~10월 중 남북 각 50명의 대학생이 서로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여정이다. 이어 통일부는 남북 공동 학술회의와 특별전시회에는 1억원을 들였다. 3·1 운동 발생 배경 및 전개 과정, 남북 및 해외의 각 지역별 활동 사례와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안중근 의사의 남북 유해발굴도 추진위 과제로 꼽혔다. 국가보훈처는 이 사업에 1억3900만원을 투입해 올해 내 안 의사의 유해 매장지로 추정되는 중국 다롄(大連)에서 북한과 공동 발굴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해 7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한완상 공동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해 7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한완상 공동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추진위가 선정한 철도 관련 사업도 북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통일부 주관 ‘유라시아 종단 희망열차 시험 운행’의 경우 서울과 개성을 철도로 왕복해야 해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 통일부는 시험운행을 위한 계획 초안 작성을 올해 2~3월에, 시험운행 관련 대북 협의와 철도 운행구간 사전 점검을 5월까지 각각 마무리한 뒤 하반기 행사를 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리랑을 소재로 한 북한 현지 취재와 공연도 100주년 기념사업에 포함됐다. 강원도 정선군이 주관하는 해당 기획엔 북한 현지에서 아리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3월 중 방송하고 오는 5~11월 북한에서 ‘3.1 운동 100주년 기획 아리랑 공연’을 연다는 내용이 담겼다. 사업 장소를 ‘북한 일원’으로 명시한 이 사업에는 우선 2억원이 소요 예산으로 잡혔다.
 
추진위는 또 군 당국이 진행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내 6·25전쟁 전사자 유해 공동발굴도 100주년 기념사업에 넣었다. 8억6000만원 예산이 예정된 이 발굴 작업은 오는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다. 추진위는 “남북이 과거 6·25전쟁의 아픈 상혼을 함께 치유해 나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 효과를 들어 이 사업을 100주년 기념사업에 포함했다.
남북 군인들이 지난해 11월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과 도로개설 공사 중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국방부 제공]

남북 군인들이 지난해 11월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 제거 작업과 도로개설 공사 중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국방부 제공]

 
100주년 행사의 메인 이벤트와 관련해선 북한의 참여가 필수적이진 않지만 북한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침이 포함되기도 했다. 행안부 주관으로 30억1300만원 예산이 예정된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 계획안에는 “북한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검토를 병행”이라는 구절이 담겨있다.
 
그러나 추진위가 세운 이 같은 계획은 북한의 무반응으로 인해 대부분 실현 여부가 불투명하다. 추진위와 통일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들 100주년 기념사업 계획안을 북한에 제안해놨지만 3월 1일을 약 보름 앞둔 지금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3월 방영 예정인 아리랑 다큐멘터리가 북한 현지 취재 대신 일본 등 해외 취재로 진행되는 등 일부 시기가 임박한 남북 공동 사업은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들 사업 중 현재 북한이 참여 의사를 밝힌 건 DMZ 내 유해 공동발굴 정도다.  
 
이런 상황을 두고 북한의 속내를 파악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예산만 편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일성 주도의 항일투쟁에만 정통성을 부여하는 북한 입장에선 남한이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3·1운동 기념사업에 동참하는 게 처음부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3·1운동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는 있을 수 있다”며 “북한 입장에선 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과 북·미 정상회담 준비 등 빠듯한 외교 일정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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