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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음란물 차단, 국가는 또 졌다

중앙일보 2019.02.14 00:33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포털 댓글 칸이 해외 포르노 사이트 차단 문제로 시끌벅적하다가 하루 이틀 새 꽤 조용해졌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 글귀가 담긴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가 다시 돌아다녔는데, 정말로 답을 찾았나 보다. 우회 접속 방법과 사용 후기들이 쏟아진다. 정부의 고강도 정책은 그 사이 ‘보려는 욕망’의 수위가 ‘우회의 번잡함’을 잠시 감수할 만큼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게 됐다. 누군가가 곧 더 쉬운 방법을 내놓을 것이고, 그 순간 정부의 고귀한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이 분야에서 늘 그랬듯이.

 
정부가 통신사와 머리를 맞댄 뒤 도입한 기술은 이름하여 ‘SNI(서버 이름 표시) 필드 차단’이다. 전문가들 설명에 따르면 각 인터넷 이용자가 사이트를 접속할 때 온라인상에서 암호화된 정보를 보내는데, 첫 교신 순간에 허점이 있다. 암호화되지 않은 행선지(접속하려는 곳) 정보가 한 차례 발송된다. 인터넷 사용자와 각 사이트의 중간에 있는 통신사가 그 정보를 활용해 유해 사이트로 가는 길목을 막아버리는 것이 새로 사용된 기술이고, 그 행선지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칭 인터스텔라 네티즌들이 알려주는 우회 책이다.

 
정부가 쓴 기술은 ‘검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행선지 정보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직접 보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가려낸다. 정부 측은 정보 그 자체를 검열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편지로 비유하자면 맨 위의 ‘○○○께’를 보고 그 ○○○이 ‘유해 리스트’에 있으면 송달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검열에 해당할 수 있다(그 아래의 내용은 보지 않는다 해도)는 전문가들 주장에 정부가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인터넷 검열의 시초가 될 우려가 있다’는 글이 올랐고, 사흘 새 10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허무맹랑한 말을 퍼뜨린다고, 국민 정서 함양에 매우 부정적이라고 판단하는 다른 종류의 ‘유해’ 사이트 차단에도 이 방법을 쓸 수 있다. 중국과 북한, 이슬람권 국가에서 그렇듯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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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서양 나라들은 한국처럼 국민을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이 도덕적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까. 그리 어렵지도,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는 일인데도. 본디 음란마귀들의 나라여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쉽게 해결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수십 년의 학술적 논쟁과 법정 싸움이 있었다. 그 결과가 ‘국가가 일률적 기준을 정해놓고 통제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합의다.

 
미국·영국에서의 음란물 논쟁은 대개 자유주의 시조 존 스튜어트 밀의 ‘해악 원칙(harm principle)’에서 시작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다. 규제 찬성 측에서는 성 문화·인식의 왜곡이라는 해악이 생기므로 막아야 한다고 하고, 반대 측에서는 그런 해악이 객관적으로 입증됐느냐고 따진다. 미국의 석학 로널드 드워킨(법·정치철학 전공)도 포르노물을 쉽게 볼 수 있는 현대 사회가 과거 사회보다 성적으로 더 문란해졌다는 근거를 대 달라고 규제론자들에게 요구했다. 수긍할 만한 자료를 본 적이 없다면서. 여기에서 말하는 음란물은 포르노 배우들이 동의해 찍은 것을 뜻한다. 미성년자 영상, 도촬이나 보복 유출 영상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포르노 천국 서양에서도 이런 것은 처벌한다. 아동 포르노 제작자는 종신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미국 각급 법원에 음란물 관련 송사가 끊임없이 있었고, 규제론자들이 번번이 졌다. 이유는 크게 다음 세 가지였다. ①음란·유해 여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 정부에게 그것을 정할 권한이 없다. ②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인터넷의 본질이다. 정부가 통제하기 시작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③이미 형사법으로 아동 포르노 제작·유통·소지 및 도촬 됐거나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영상 유포는 처벌하고 있다. 일괄적 차단은 과잉 조치다.

 
한 영국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10대 학생들이 속옷과 다름없는 의상을 입고 춤추는 영상이 TV에 계속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유럽에선 아동 학대로 고발될 일이다.” ‘한류 전사’라고 불리는 K팝 걸그룹에 대한 얘기였다. 국회의원이 미국에서 스트립바에 간 게 문제가 되고,  “홀딱 벗은 것은 못 봤다”는 해명이 나오는 국가인데, 서울 전역에 성매매 업소가 널려 있다. 이런 이중적 현실에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에게 일본인 교수 오구라 기조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첫 장에 있는 문구를 전한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이 오묘한 나라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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