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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미래] KSTAR와 대통령

중앙일보 2019.02.14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국군의 날 행사차 계룡대를 찾았던 대통령은 갑자기 발길을 돌려 연구소에 들렀다. 대통령은 핵융합시설 건설현장을 둘러본 후 연구원들을 모아놓고 핵융합에 대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인류 에너지 문제와 지구환경 문제에서부터 인공태양에 이르기까지, 그 해박한 지식과 식견에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대통령은 흥분을 애써 감추며 격려사 원고를 펼쳐 들었다. (…) “인간이 스스로 멸망하지 않고 이 지구 상에서 항구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판단을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 바로 이 핵융합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격려사를 마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대전 국가핵융합연구소에 남아있는 기록이다. 첫째 문단의 주인공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는 2001년 10월 예고도 없이 불쑥 대전 KSTAR(핵융합연구장치) 건설 현장을 찾아 연구자들을 감동하게 했다. 둘째 문단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다. 2007년 KSTAR 완공식을 찾아 미래 에너지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심어줬다. 연구소의 대통령 기록은 여기서 끝났다.
 
미래는 아무나 말할 수 있다. 30~50년 뒤 제법 먼 미래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기업 임원이나 고위 관료의 시계(視界)는 길어야 1년이다.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의 의지와 말은 천금의 무게와 실행력을 갖는다.
 
KSTAR가 초전도 핵융합 장치로서는 세계 최초로 중심 이온 온도 1억도 이상의 초고온 고성능 플라스마를 1.5초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고 13일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전했다. 다음 세대를 내다보고 과학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해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덕이다. 앞서 국가 핵융합연구를 발족시킨 김영삼 대통령 또한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 한국 핵융합발전은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이 참여한 프랑스 국제 핵융합실험로(ITER) 공사가 6년 뒤면 완공된다. 그리고 10년이 더 지나면 핵융합 발전의 상업성 여부가 확인된다. 한국의 최대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이미 시진핑 주석의 지휘 하에 핵융합발전도 할 수 있는 실증로 건설까지 발표했다. 그럼 우리는? 성과가 나오니 다행이긴 하지만, 현재 투자도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KSTAR의 박사들은 30년 혜안을 가진 대통령의 발길을 다시 한번 기다리고 있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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