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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조직·인력 들어내서라도 ‘암반 규제’ 혁파하라

중앙일보 2019.02.14 00:25 종합 30면 지면보기
규제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국무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회의가 시작되자 그 이유가 바로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혁신을 시도하려면 정부가 지원자 역할을 단단히 해야 한다”며 “규제 샌드박스 심의 절차가 신청 기업들 입장에서 또 다른 장벽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내각을 질타했다. 늘 온화한 표정을 짓는 문 대통령이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식으로 대놓고 내각을 꾸짖었겠는가.
 
문 대통령은 올 들어 경제 현장을 돌아볼 때마다 수행 공무원들에게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주라고 당부해 왔다. 지난달 17일 ‘규제 샌드박스’가 진통 끝에 처음 신청을 받게 된 것도 대통령의 이런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가 모래밭에서 마음껏 뛰놀듯 신기술에는 기존 규제의 적용을 일정 기간 면제해 주는 조치다. 이에 따라 정부는 11일 첫 규제 샌드박스 승인 심사를 벌였다. 그 결과 도심 수소차 충전과 유전체 분석 등 4건이 허용됐다.
 
하지만 기업들은 조마조마하다. 규제 샌드박스에 들어가려면 법률 검토와 심의라는 또 다른 관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 기업들이 급변하는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애자일(agile, 신속한)경영’에 나선 터에 한국 기업들은 언제 승인될지도 모를 규제 샌드박스 앞에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그러니 문 대통령마저 “이번 승인 사례들을 보면서 이 정도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란 특별한 제도가 필요했던가”라고 탄식했던 것 아닌가.
 
더 큰 문제는 기존 산업에도 없어져야 할 돌덩어리 같은 암반 규제가 도처에 널렸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1만6000여 개에 달하는 각 부처 훈령, 예규, 고시, 지칭 등 행정규칙에 대해서도 규제 측면에서 정비할 부분이 없는지 전반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지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경고 메시지에도 규제 혁파가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규제를 움켜쥐고 있는 장·차관을 문책하고, 산하 조직·인력을 과감하게 들어내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특단의 대책외에는 이제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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