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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OUT]“규제 없애는 게 능사 아니다, 창의적 규제 만드는 게 실력”

중앙일보 2019.02.14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조규곤

조규곤

규제는 생물이다. 성장과 소멸을 반복한다.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하기도 한다. 이런 규제의 속성을 20년간 산업 현장에서 지켜 본 사람이 있다. 파수닷컴의 조규곤(60) 대표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해 유학 후 삼성SDS에서 사내 벤처를 차렸다가 2000년 파수닷컴을 설립해 분사했다. 파수닷컴은 DRM(디지털 저작권 보호) 기술로 ‘닷컴 버블’의 붕괴 속에서 살아남아 현재 연매출 300억원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5년 전부터 비식별정보 처리 기술(개개인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가명 처리하는 기술)에 투자했지만 해가 바뀌고 정부가 바뀌어도 규제는 풀릴 조짐이 없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개인정보보호법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2014년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터지면서 올스톱 됐다. 2년 뒤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 활용하던 기업들이 소송을 당하면서 시장은 오히려 더 위축됐다. 파수닷컴은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행사’에서 규제 완화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관련 법안은 현재도 국회에 갇혀있다.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의 파수닷컴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지난 연말에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나는 생각보다 의외로 논란이 빨리 진전된다고 본다. 그동안의 관행으로 보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관행을 말하나.
“정부는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대로 가고,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일방통행을 한다. 그래놓고 그 다음에 국회로 공을 넘긴다. 합의된 절차에 의해 의견이 수렴되면, 미흡하더라도 서로 수긍해야 하는데 정부안이 나왔는데도 시민단체 반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결론이 나지 않으니 사업도 차질이 있을 것 같다.   
“사회적 균형점을 늦게 찾으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시간이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관련 산업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움직일 수가 없다. 먼저 앞서가다 법에 저촉되다보니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규제 개선이 늦어지면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나. 
“4차 산업의 핵심인 인공지능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수다. 활용성이 높은 데이터는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가명 처리와 분석 기법을 통해 잘 활용해야 다른 나라 기업과 경쟁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 생산할 때도 어떤 기능을 넣는 게 시장 반응이 좋을까를 미리 판단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해외 업체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20년간 기업을 운영하며 규제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벤처 창업 당시는 규제가 아예 없었다. 현재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비된 지도 얼마 안됐다.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지자마자 활용(규제 완화)이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만큼 산업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남의 나라를 뒤따라 가면서 규제나 법도 그냥 베끼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글로벌 리딩 그룹이라 규제도 마냥 따라 할 수 없다. 규제를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환경에 맞는 새롭고 창의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창조적 규제’를 만드는 게 실력이고 능력인데 우린 그게 부족하다.”
 
규제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는 청년도 많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은 규제를 염두에 둬선 안된다. 규제가 겁나서 뭘 못한다, 그건 기업가 정신이 아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수요 제기를 하면서 규제를 해쳐 나가야 한다. 정부와 국회에 맞서 규제를 헤쳐 나가는 것도 기업가의 몫이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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