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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이 기록한 대한제국 외교자료, 130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2019.02.13 17:59
월남 이상재의 종손 이상구씨가 기증한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표지. [사진 문화재청]

월남 이상재의 종손 이상구씨가 기증한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 표지. [사진 문화재청]

 '미국공사왕복수록'의 내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공사왕복수록'의 내부.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서들도 포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유품이자 주미대한제국공사관과 관련된 외교자료 8점이 130년 만에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이상재 선생의 종손인 이상구(74세) 씨로부터 기증받은 외교자료 8점을 13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이 자료들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미국 워싱턴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하면서 사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들이다. 
 
이상재 선생은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돼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 DC에 들어갔다가 같은 해 11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다시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 일했다. 
 
이상재(1850~1927) 주미공사관 재직시절 모습. 1888년워싱턴 DC에서 촤령했다고 한다.[사진 문화재청]

이상재(1850~1927) 주미공사관 재직시절 모습. 1888년워싱턴 DC에서 촤령했다고 한다.[사진 문화재청]

공사관원 재직 시 이하영(서리공사) 사진.1888년 촬영했다. [사진 문화재청]

공사관원 재직 시 이하영(서리공사) 사진.1888년 촬영했다. [사진 문화재청]

첫 외교활동 보여주는 최초 자료 
기증 자료는 문헌 자료 5점과 사진 자료 3점이다. 이중『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과 미국서간(美國書簡)은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최초의 자료라서 특히 눈길을 끈다.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업무와 공사관의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들의 ‘업무편람’에 해당하는 것으로, 1883년 미국 아더 대통령(Chester A. Arthur)이 초대 주한공사 푸트(Lucius H. Foote)를 조선에 파견하며 고종에게 전달한 외교문서▶박정양 공사가 미국 정부 또는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 ▶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했던 조선왕조와 미국 정부 간 각종 현안사업과 관련된 문서 ▶ 업무수행에 필요한 각종 비망록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인선 설치 '철도약장' 초안  
특히, 당시 조미 간 현안사업 중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설치 등 3건을 추진하기 위해 제안한 규칙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돼 있으며, 이중 그들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鐵道約章)’ 초안이 함께 수록돼 있어 주목할 만하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이 미국인 모스(J. R. Morse)에게 부설권을 허가하였으나, 모스가 이를 1897년 5월 다시 일본 측에 넘기면서 결국 1899년 9월 일본 측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자료를 통해 1888년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으며, 관련 계약서의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력지원팀장은 "대한제국이 이미 철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고 공사관이 자주외교 뿐 아니라 근대 문물을 도입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의 갈등 기록  
이 기록에는 중국과 관련된 내용도 등장한다. 본문에는 "중국공사가 매번 트집을 잡아 정말 소위 진퇴유곡의 처지이다"라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중국공사가 매번 양보하지 않고 고집부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혹 서로 부딪히면 우리나라가 천진으로부터 곤란을 당할까 두렵다"고 쓰여 있다.  

 
또 "중국공사 사이에는 허다하게 고집하는 단서가 있다. 중국공사는 매번 체제로 우리나라공사의 위에 서고자 하고, 우리공사 역시 그 밑에 있지 않으려고 한다. 대저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공사는 30여 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공사와 서로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이는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1888년 박정양이 병으로 임시 귀환하므로 서기관 이하영을 대리공사로 임명한다고 미국 정부에 통보한 문서도 포함돼 있다. 한 교수는 "박정양은 중국 측의 파미 허락조건이었던 '영약삼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재 기간 동안 내내 중국의 강력한 항의와 압력으로 시달렸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는 1988년 11월 12일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박정양에게 소환 명령을 내리고 알렌을 대리공사로 임영했다. 
 
이에 박정양은 조선인 관원이 있음에도 외국인을 대리로 삼는 것이 매우 구차스럽고 다른 나라의 비웃음을 살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알렌 대신 그보다 직위가 낮은 서기관 이하영을 추천해 허락을 받아냈다.  
 
치욕의 '영약삼단',박정양의 귀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의 파견 전제조건은 '영약삼단'이었다. 영약삼단은 고종이 박정양을 주미공사로 임명하며 약속한 것으로, 한국의 외교 사절은 ① 주재국에 도착하면 먼저 청국공사를 찾아와 그의 안내로 주재국 외무성에 간다. ② 대한제국 공사는 회의나 연회석상에서 청국공사의 밑에 자리를 잡는다③ 대한제국 공사는 중대사건이 있을 때 반듯이 청국공사와 미리 협의한다라는 것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주미공사단은 영약삼단을 무시하고 중국공사 장음환을 먼저 방문하지 않은 채, 미국 국무장관을 직접 방문하겠다고 문서를 보냈다. 이 문서 내용도 이번 자료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박정양은 중국이 조선을 속방으로 대외적으로 각인시키려던 '영약삼단'을 거부하고 자우외교를 펼쳐 소환된 것이다.  

 
 '미국서간' 표지. [사진 문화재청]

'미국서간' 표지. [사진 문화재청]

 미국서간 중 일부. 미국 물정에 대해 적은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 문화재청]

미국서간 중 일부. 미국 물정에 대해 적은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 문화재청]

 
이상재의 편지 38통 
미국서간은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했던 편지 38통을 수록하고 있는 편지 모음이다. 주 내용은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 서기관으로 미국에 파견된 기간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등 집안일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 편지에 주미공사관 운영 상황, 미국에 주재하는 동안 활동하거나 견문한 사항 혹은 느낀 점 등이 부분적으로 기록돼 있어 당시 공사관의 실상, 그의 활동상과 미국관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상재 선생의 종손인 이상구(74) 씨는 "이 귀중한 자료들은 월남 선생님부터 5대째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며 "집안에서 보관할 자료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연락이 와서 국가에 기증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라에서 보관하고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철호 교수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는 미국에 최초로 공사를 파견한 우리나라의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담고 있다"며 "초대 주미공사의 활동을 보여주는 당시 외교 관련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가뭄의 단비처럼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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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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