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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2000만원에 팔아드릴게" 공인중개사, 5000만원 챙겼다

중앙일보 2019.02.13 17:34
이문 1구역 재개발 지역 조감도.

이문 1구역 재개발 지역 조감도.

 
재개발지역 부동산 입주권, 속칭 ‘딱지’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돈을 챙긴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북부지검 건설·조세·재정범죄전담부(부장검사 김명수)는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5억2000여만원을 빼돌린 공인중개사 최모(55)씨를 구속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현직 경찰 A(49)씨와 경제방송 출연자 B(57)씨는 횡령 및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됐다. 현직 경찰 A씨는 재개발 조합장 사무실에 흉기를 들고 찾아간 사건으로 특수협박죄가 추가됐다. 
 
공인중개사 최씨는 2005년부터 동대문구 이문1 재개발구역의 주택과 입주권 거래를 중개해왔다. 검찰은 "재개발 사업 시행이 늦어지는 초조함에 입주권을 빨리 팔아버리려는 사람과, 조합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사람들 간에 ‘빨리, 편리하게’ 처리하려는 심리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실거주용 부동산이 아닌, 투자 목적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지역의 경우는 매수인이 확인을 덜 꼼꼼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점도 악용했다. 
 
이들이 중간에 돈을 빼돌린 과정은 부동산 매매 계약을 잘 아는 주변 부동산의 눈도 피할 정도였다. 이들의 수법을 통해 매매 거래에서 주의해야할 점을 짚어봤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①‘주인이 바쁘다’며 대면 없이 전화만 하면 꼭 의심  
최씨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에게 거래 금액을 다르게 알려주고 차액은 자신이 가로챘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직접 만나 거래하고 동일 계약서 2장을 나눠갖는 게 원칙이지만, 최씨는 “파는 사람이 지방에 사는데 바빠서 못 온다고 한다” “사는 사람이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갔다”등 이유로 대면 계약이 어렵다며 자신이 대신 계약서를 작성했다.

 
최씨는 의심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계약서 상 연락처란을 쓰지 않거나, 공범인 A씨의 번호를 적었다. 검찰에서 A씨는 "번호를 도용당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통장을 빌려주고 매매대금 입금을 받는 등 공모 정황이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입금과 관련해 확인전화가 오면, A씨는 ‘파는 사람’ 혹은 ‘사는 사람’인 척 연기를 했다. 한 거래에서 1인 2역을 한 적도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②계약서 금액≠등기부상 거래신고금액? 거래 후 등기 확인 꼭  
최씨는 오랜시간 공인중개사 일을 하면서, 매도자들이 입주권을 팔고나선 등기부등본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거래 금액을 허위로 신고하고 차익을 챙겼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빼돌린 금액은 5억2000만원에 달한다.
 
최씨는 대신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파는 사람에게는 1억2000만원 짜리 계약서를, 산 사람에게는 1억7000만원 짜리 계약서를 각각 내밀었다. 이후 산 사람이 1억7000만원을 입금하면, 최씨는 판 사람에게 전화해 “5000만원이 실수로 잘못 들어갔으니 내 계좌로 입금하라”며 자신의 통장으로 돈을 받아 가로챘다. 공범인 A씨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가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거래 당사자 명의 통장으로 입금’이 정석이지만, 투자 수요가 많은 재개발지역에선 타인의 명의로 입금받는 일이 흔하다보니 피해자들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매도자는 조금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매수자는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었지만 5000만원은 최씨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는 "나는 매도인에게 받아다 주기로 한 금액을 받아다 줬을 뿐이다. 매도·매수 금액 차이를 크게 해서 이익을 취한 부분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③‘거래금액 뻥튀기해 대출받으면 된다’? '사기'입니다
최씨는 일부 매도인들에게 “매매대금이 1억7000만원인데, 계약서를 3억원으로 적으면 대출이 1억 8000만원까지 나오니까 그렇게 하자”며 실거래가 신고 금액을 뻥튀기했다. 하지만 대출 없이 매수가 가능한 경우는 1억7000만원으로 매매가 진행됐다. 부동산의 크기와 가격이 다양한 재개발지역의 특성상 비슷한 물건이 2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금액에 거래돼도 구청·국토부에서도 이상한 점을 잡아내지 못했다. 돈을 빌려준 은행은 별도 감정 과정이 있음에도 '뻥튀기 거래'를 잡아내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인근 입주권 거래 가격이 점점 올라갔지만, 주변 공인중개사들도 최씨의 범행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유일하게 재개발 조합장이 "뻥튀기 거래 의혹이 있으니 소명하라"며 최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자, A씨는 흉기를 들고 조합 사무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실거래금액을 허위로 기재해 대출을 받는 행위는 '사기'에 해당한다. 다만 이번 사건처럼 은행에서 검증 과정을 거쳐 대출이 이뤄진 경우 은행을 '피해자'로 보기 어려워 사기 혐의 적용이 어렵다. '업 계약'이 확인될 경우 지자체에서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거래가 허위 신고'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서울 한 경찰서 소속 A경위가 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재개발조합 사무실에서 신문지에 싼 흉기를 들고(빨간색 동그라미) 조합원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 이문1구역 재개발조합 ]

서울 한 경찰서 소속 A경위가 14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재개발조합 사무실에서 신문지에 싼 흉기를 들고(빨간색 동그라미) 조합원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 이문1구역 재개발조합 ]

 
④경제방송 소개 매물도 한 번 더 '직접검증' 해야
B씨는 '부동산 전문가'로 경제방송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매수인 9명을 최씨에게 소개시켜주고 건당 500만원씩 총 4500만원을 받았다. 경제 채널에서 해당 구역 매물을 소개하면서, 역시 최씨가 설정한 '가짜 매수금액'을 홍보했다. 검찰은 "개인의 비위사항이라 케이블 방송사의 방조 여부를 수사하지는 않았다"면서도 "부동산 전문 채널 소개 매물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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