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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계의 새 물결] 5.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 生死學

중앙일보 2003.09.28 16:53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근 우리 사회에 자살, 혹은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언론보도를 통해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탈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죽음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죽음이란 궁극적으로 삶의 문제

인간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나 죽고, 어디서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죽음을 자신의 일이 아닌 듯 여긴다. 죽음을 수용하는 첫걸음은 '왜 나만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왜 나라고 죽으면 안되는가'라는 물음에로 옮아가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주 늦게, 혹은 실제로 자신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야 겨우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죽음을 유념하며 삶을 산다는 말은 의미없는 활동과 의미있는 활동을 구분해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히 영위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준비는 말 그대로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이라기보다 삶을 준비하라는 의미, 자기 삶을 제대로 영위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죽음 준비교육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아야 되는 삶의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죽음 준비 교육을 초.중.고등 학교의 다양한 교과목 안에 포함시켜 가르치고 있다. 독일 역시 초등학교 1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최종 학년에 이르기까지 종교수업 시간에 학생의 성장과정에 맞게 죽음이란 테마를 다양한 각도에서 취급하고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접하게 된다. 누구든지 사는 모습 그대로, 그 마음 그대로 죽는다.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내일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곧 삶의 거울이다. 따라서 죽음, 그것은 곧 삶의 문제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의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온하게,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취" 라고 말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평화롭게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폭력으로 가득 차 있거나 성냄.집착.공포 같은 감정으로 크게 혼란스럽다면, 평화롭게 죽을 수 없음 또한 자명하다. 따라서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고자 한다면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화로운 죽음을 희망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평화를 일구어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암 같은 질병을 일종의 경고라고 간주한다. 우리가 영적인 욕구 같은 존재의 깊은 차원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고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면 우리의 존재 전체를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해진다. 티베트의 '바르도(죽음과 재생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단계)' 가르침에 따르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취의 순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죽어가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죽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죽음에 임하는 사람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죽음은 두려운 현상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어떤 식으로 맞이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다. 언제든지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죽음,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시점이다.



오진탁 교수 <한림대.철학>



◇ 약력=▶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 취득. 한림대 철학과 교수. 불교.노장 철학 담당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 등 번역 ▶자살.낙태.사형수.에이즈 등을 소재로 국내 '생사학'연구를 주도 ▶오는 11월께 '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가제, 청림)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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