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용우 “국민이 촛불 혁명 이뤘는데, 정치인은 열매나 즐겨”

중앙일보 2019.02.13 08:19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연합뉴스]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연합뉴스]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직에 응모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한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절차에 대해 “이번 관장 임명 절차도 예상대로 상처투성이였다”라고 12일 비판했다. 그는 “기회균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한 공개모집제도가 비공정성으로 얼룩졌으며, 촛불혁명 정부가 내세운 정의와 기회균등의 철학이 시험받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입장을 보내 “이번 인사가 소문이나 언론 보도대로 이미 내정된 인사라면 최종 후보자들은 물론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갖고 공모에 응했던 미술계 내로라하는 10여 명의 응모자를 농락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장 등을 지낸 이 전 대표는 이번 공모에서 유일하게 역량 평가를 통과하며 최종 후보자 3명 중 유일하게 합격했지만, 다시 한번 치러진 시험에서 탈락했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는 통과자가 있음에도 재차 역량평가를 했고, 이 역량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고 탈락한 민중미술 계열 평론가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에게 재평가 기회를 주며 임명을 강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선임하면서 역량평가를 두 번 치른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는 “나를 두둔하거나 오해하는 견해가 문화계에서 회자될 때도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나의 탈락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음해성 정보들이 생산, 보급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또 “촛불 혁명은 깨어난 시민·국민들이 이뤘는데 정치인들은 열매나 즐기며 문화예술계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라며 “이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예산을) 700억원이나 쓰면서 글로벌 시각 문화 현장에서 무명 미술관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깨쳐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이 1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윤범모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문체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이 1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윤범모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문체부]

 
윤범모 신임 관장은 지난 1일 임명됐다. 윤 신임 관장 임명에 대해 미술계는 민중미술 쪽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이 나왔다는 예상했던 결과라는 입장이다. 기대감을 보이는 입장도 있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단 윤 신임 관장은 조직을 이끈 경력은 없다. 근대와 민중미술 분야에 밝지만, 현대미술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는 우려가 있다. 또 국내에서는 ‘마당발’로 불릴 만큼 인맥이 탄탄하지만, 특히 국제무대에서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 서울관·과천관·덕수궁관과 지난해 12월 문을 연 청주관(수장보존센터) 등 4개 미술관을 거느리고 있다. 한 해 예산은 632억원으로 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이용우 입장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임명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절차가 이번에도 예상대로 상처투성이다. 「기회균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한 공개모집제도가 「비공정성」으로 얼룩졌으며, 촛불혁명 정부가 내세운 정의와 기회균등의 철학이 시험받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정의구현의 차원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기대와 소망을 많이 걸었던 이번 정부인데 참 많이 아쉽다. 촛불혁명은 깨어난 시민, 국민들이 이루었는데 정치인들은 열매나 즐기며 문화예술계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
 
이번 인사가 소문이나 보도대로 이미 내정된 인사라면 최종 후보자들은 물론,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갖고 공모에 응했던 미술계의 내로라하는 십 여 명의 다른 응모자들을 농락한 것이며, 헛걸음하게 만들었다. 보통 일이 아니다.  
 
고위공무원 역량평가에서 1차로 통과했던 나를 보고 주변에선 관장 자리를 도둑맞았다면서 침묵할 일이 아니라고 난리다. 그들은 내게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한 정치적 암수에 당했다”고 말한다. 이 일의 중심에서 명한 자와 수행한 자의 이름까지 시중에 나돈다. 동의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참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결과에 앞서, 나와 함께 공모과정에서 최종 선발에 오른 김홍희 선생이나 윤범모 선생은 국립현대미술관을 훌륭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인사들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이념이나 정치, 문화계의 패거리의식과 상관없이 내가 오래 알고 있는 그 분들의 바탕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인사혁신처의 고위공무원 역량평가 제도가 차라리 유명무실 했더라면, 그리고 내가 역량평가에서 실패했더라면 아무 일 없이 조용했을 것을. 결국 이 제도를 도입한 노무현정부와 내가 유죄가 아닌가.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모제로부터 욕망을 졸업시키지 못하고 부역한 내가 더욱 유죄다.  
 
나는 문화관광부 장관은 물론 문광부의 해당 직원조차 일면식이 없다. 어찌 보면 들풀처럼 뜻만 무성한 채 공모제를 믿고 전쟁터에 나선, 대책 없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 같다. 국가의 제도와 규범은 그것을 시행하는 정부 관리들에 의해 성취되거나, 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적어도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에 응모한 13명의 후보자들은 정부의 제도와 시행의 규범들을 믿었던 것 같다.  
 
이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7백억이나 쓰면서 글로벌 시각문화현장에서 무명 미술관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깨우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장도를 바란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