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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 손님 스트레스? 우선 근처 맛집부터 찾아보자

중앙일보 2019.02.13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5)
네가 온다고 하면 허둥대.
왜 안 오지?
왜 안 오는 거지?
문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가
몇 번을 그렇게 해.
네가 와 있는 시간 잠시
마음 편해지다가
다시 허둥대기 시작해.
왜 안 가지?
언제쯤 갈 건데?
아니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 건데?
언제나 네 앞에서는 허둥대는 마음
나도 모르겠어.
(나태주님의 시 중에서)
 
아침에 딸아이 집에 가니 갓 이사 온 신혼부부 집처럼 반짝인다. 딸의 시어머니가 대구 가시는 길에 잠시 들러 차 한잔하고 간다는 말에 집안을 유리알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고는 제 꼬락서니는 삶아놓은 배춧잎 꼴이다.
 
애 셋 있는 집이 좀 지저분하면 어때.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부들은 누군가 방문한다고 연락오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놓느라 부지런을 떤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애 셋 있는 집이 좀 지저분하면 어때.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부들은 누군가 방문한다고 연락오면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놓느라 부지런을 떤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애 셋이 있는 집이 방목장 급이지. 매번 이러면 너도 힘들고 다니러 온 시어머니도 마음이 불편하단다. 어린놈들이 뛰고 다니는 집이 좀 지저분하면 어때. 대충 청소만 해놓고 맞이해야 서로 불편하지 않고 예의가 있는 거야. 이러니 손주 보러 들르고 싶어도 손님 같아서 불편하니 못 오는 거지. 하기야 나 역시 며느리가 방문한다 해도 청소한다고 종일 난리를 치긴 한다. 하하.’
 
어른인 나도 느긋하게 앉아서 여유 있는 대화를 해봤어야 대충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바쁜 세상살이에 가족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그러니 우선 온다고 하면 대접하려 하고 큰 손님 대하듯이 하니 더욱더 허둥대는 꼴만 남은 셈이다.
 
 
가까운 곳에 미용실 하는 지인도 오늘 허둥댄다. 내 머리를 손질하려고 전화하니 오늘은 가게 문을 안 열었단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엄마 같은 큰언니가 안동 오신다는 연락이 와서 기다리는 중이란다. 언니가 오시면 머리도 만져 드리고 수다도 떨 요량으로 미장원 문을 닫고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도 준비해놓고 대청소를 하고 기다리는데 때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 언니에게 전화하니 친구들이랑 안동찜닭으로 점심 먹는 중이시란다.
 
가기 전에 잠시 들러 네 얼굴이나 보고 갈 거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기운이 쏙 빠졌다고 허탈한 마음 대신 나랑 전화 수다가 이어진다. 생각해 보니 그냥 안동 지나면서 들른다는 말만 했지 머리 만지고 우리 집 방문이 목적이란 말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혼자서 법석을 떨고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전에야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밥 먹었어요? 식사하셨어요?’가 인사가 될 만큼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밥 한 끼를 먹여 보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요즘은 음료에 간식에 넘치는 게 먹거리라 제때에 밥을 안 먹어도 굶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외국인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 간단한 샐러드와 음료수를 준비한 편안한 손님맞이를 경험했다. [중앙포토]

외국인 이웃집에 놀러 갔을 때 간단한 샐러드와 음료수를 준비한 편안한 손님맞이를 경험했다. [중앙포토]

 
각자의 모습으로 사는 삶을 들여다보고 살아가는 안부와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게 우리의 만남인데 우리네 손님맞이는 아직도 너무 피곤한 스타일이다. 가족끼리가 이럴진대 외부 손님치레는 말해 뭣하리!
 
몇 해 전 아들네 집에 갔을 때 이웃이 나를 점심에 초대한다며 연락해 왔다. 외국인이 나를 초대하면 어떤 음식이 나올까? 밥상은? 등등 가슴이 벌렁거리고 말도 안 통하는데 벙어리같이 앉아 밥만 먹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불안했다. 그렇게 긴장하며 갔는데 커다란 식탁에 음식이라곤 따뜻한 차 한 잔과 샌드위치 한 조각 야채 샐러드가 전부였다. 대신 마당에서 갓 꺾어다 놓았다는 들꽃다발이 향기를 더해주었다. 그렇게 한 달간 지내면서 차 한잔하는 벙어리 이웃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이면 대충 청소만 해놓고 맛집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경제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아니겠는가?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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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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