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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읽기]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이 많다

중앙일보 2019.02.13 00:18 종합 32면 지면보기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선택이란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이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형벌인 것이 선택이다. 그 고통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메뉴가 바로 ‘아무거나’다.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는데도 이러한 무모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선택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기 때문이다. 자기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요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우라면, 아무거나를 선택하는 것이 최고의 존경의 표시일 수 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픈 경우에도 아무거나 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이라면 아무거나 선택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선택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습관적인 고육지책으로 ‘아무거나’를 남발하고 있다면, 음식뿐 아니라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이 같은 도피성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음식도 아무거나, 영화도 아무거나, 여행도 아무 데나, 심지어 직업도 아무거나…. 모든 것이 아무거나 라면 답은 둘 중 하나다. 내공이 아주 깊은 사람이거나,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에 관한 한 천재다. 행복 천재들은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관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많으면,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다. 싫어하는 사람들, 싫어하는 일들, 싫어하는 장소들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 둔재들은 싫어하는 것에 관한 천재다. 하고 싶은 일은 별로 없어도 하기 싫은 것은 많다.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물으면 단호하게 대답한다.
 
마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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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가 최근에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각각 1분 동안 자유롭게 적어보도록 했다. 무엇을 적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 뒤에 각 참가자가 현재 느끼는 행복의 정도를 별도의 방법으로 측정한 다음, 그들이 주어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이 적었는지, 얼마다 독특한 것들을 적었는지, 또 얼마나 구체적으로 적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도 물었다.
 
결과가 매우 흥미로웠다. 행복감이 높은 참가자들일수록 좋아하는 것을 많이 적었을 뿐 아니라, 범주도 다양했다. 또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아주 구체적이었다. 예를 들어 행복감이 낮은 참가자들이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고 적는다면, 행복감이 높은 참가자들은 ‘한적한 버스나 기차에서 노래 들으며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적는 식이었다. 뿐만 아니라 행복한 참가자들은 좋아하는 것을 적어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보고했다. 반면 행복감이 낮은 참가자들은 좋아하는 것을 적어내는 일을 매우 어려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게 했는데도 말이다.
 
혹시 적어낼 범주를 정해주지 않고 ‘아무거나’ 쓰라고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서, 후속 연구에서는 ‘좋아하는(싫어하는) 사람’ ‘좋아하는(싫어하는) 장소’처럼 구체적인 범주들을 제시하고 적어내게 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장소를 쉽게 많이 적어냈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것들을 어려워하며 적게 적어냈다.
 
반면 싫어하는 사람과 장소를 적어내게 했을 때는 결과가 역전됐다. 행복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것을 많이 적지 못했지만,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더 많이 적어냈다. 행복한 사람들의 머릿속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의 머릿속은 싫어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또한 좋아하는 것을 ‘빨리’ 고르기도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어떤 범주에서 10개의 항목을 제시하고(예를 들면 색깔에서 노랑, 빨강, 초록 등), 이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게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기까지의 반응시간을 컴퓨터로 측정했다. 그 결과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반응시간이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지능이 뛰어난 천재들만 길러낼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의 천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선호는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후천적이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면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해진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자식의 학벌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과연 당신은 좋아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까?’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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