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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SK하이닉스는 어디로 갈 것인가

중앙일보 2019.02.13 00:15 종합 34면 지면보기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SK하이닉스의 미래형 반도체클러스터 입지 선정이 갈수록 태산이다. 지자체의 사생결단식 유치전은 뜨겁고 정치권의 지역균형발전 주장은 여전히 거세다. SK하이닉스는 순식간에 수도권 대 지방, 경제효율 대 균형발전 갈등의 한 복판에 서게됐다. 공장 부지 선정이 졸지에 고차원 방정식이 됐다.
 
하이닉스는 그간 숱한 시련을 헤쳐왔다. SK 이름이 붙은 것도 불과 6년 전이다. 하이닉스는 외환위기 때 대기업간 빅딜로 LG전자가 현대전자에 흡수합병돼 탄생했다. 대기업의 중복투자와 높은 부채때문에 합병했지만 초기부터 투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 초 세계 IT업계에 불황이 닥치자 곧장 존폐 위기가 왔다. 미국 공장 문을 닫고 D램 칩 7200만개를 감산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15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2001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현대그룹은 경영권 포기각서를 냈고, 하이닉스는 미국 마이크론과 독일 인피니언의 먹잇감으로 내몰렸다.
 
이 때 하이닉스를 살린 건 하이닉스 임직원과 나산협(나라 산업을 생각하는 교수협의체)이다. 교수들은 세미나와 토론회, 성명서를 쏟아내며 매각 방침을 세운 정부에 맞섰다. 국가 경제를 위해 전자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임직원은 4년 간 임금동결과 무급휴가를 수용했다. 또 투자비가 없어 기존 생산라인을 재활용하는 블루칩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기간 하이닉스의 투자는 삼성전자의 10%에 불과했지만, 똘똘뭉친 임직원과 학계의 지원에 힘입어 2005년 기사회생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정글이다. 한 순간 투자를 실기하면 무대에서 영영 사라진다. 1980년대 메모리반도체를 선도하던 인텔은 PC용 메모리 투자를 놓치는 바람에 일본에 최강자 자리를 내줬다. 1990년대 메모리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역시 모바일용 메모리 투자를 미루다 삼성전자에 1위를 넘겼다. 10여 년 전 하이닉스 앞을 으르렁대던 인피니언은 흔적도 없고, 마이크론은 현재 하이닉스 밑에 있다.
 
반도체는 이렇듯 선제적인 투자와 경쟁력 확보 여부에 따라 생존이 갈린다. 빅딜, 워크아웃, 매각 위기를 넘긴 SK하이닉스가 이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번 SK하이닉스의 120조원 투자도 실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더구나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라지만 1위인 삼성전자는 저만치 앞에 있고, 당국의 총력지원을 받는 중국 YMTC 등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반도체클러스터를 취재하며 만난 공무원들과 제 돈 쓰는 SK하이닉스는 정치권이나 지자체에 눌려 목소리를 못냈다. 단 하나 분명한 건, SK하이닉스의 미래는 스스로에게 달렸지 정치권에서 책임져 줄 리 없다는 사실이다.
 
장정훈 산업 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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