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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캐슬' 용인까지 확장…'교육 사다리'가 더 무너졌다

중앙일보 2019.02.13 00:03 종합 1면 지면보기
무너진 교육사다리 <상>
용인 수지구청에서 도서관 거리에 위치한 학원가 스케치. 최승식 기자

용인 수지구청에서 도서관 거리에 위치한 학원가 스케치. 최승식 기자

“대치동 강사가 직접 강의합니다.”
 
“목동 수학의 전설을 수지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청 인근에는 ‘대치동’ ‘목동’처럼 서울의 대표 학원가 이름을 내세운 간판이 많다. 지난달 28일 찾은 이곳 학원가에는 20여 개 건물에 수백 개의 학원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외관만 보면 대치동으로 착각할 만큼 ‘대치○○학원’ 등 간판이 많았다. 노란 학원 버스들은 차로를 점거하듯 늘어서서 바쁘게 학생들을 태웠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최근찬(53)씨는 “20년 전 수지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대기업 직원들이 대거 이주했는데 이들의 자녀와 함께 학원가도 성장했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젊은 사람이 많아 유아 대상 위주였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중·고교 내신과 대입 학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사교육 시스템이 신도시 개발과 맞물리면서 인근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분당(성남)·수지(용인) 등에 학원이 밀집하면서 제2, 제3의 강남처럼 거대한 교육특구가 만들어지고 있다. 소위 ‘잘사는 지역’의 학력 수준이 급격히 높아져 다른 지역과의 교육 격차가 커지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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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준 서울 강남구의 교과교습학원 수는 1790개, 성남시 분당구는 1331개, 용인시 수지구는 826개다. 10년 전 수지로 이사한 학부모 이승욱(52)씨는 “강남 따라 분당이 생기고 분당 따라 수지 학원가가 만들어졌다”며 “교육열과 생활 수준이 높지만 천정부지로 오른 강남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수지로 온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제3의 강남으로 불리면서 10년 사이 수지의 학력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중앙일보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지역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영·수의 평균 2등급 이상 학생 비율(우수 학생 비율)을 분석해 보니 용인은 10년 새 7.3%에서 13.6%로 높아졌다. 외대부고와 같은 자사고, 외고, 특성화고는 계산에서 제외했다. 일반고 실적만 계산했는데도 우수 학생 비율이 경기도 31개 지자체 중 16위에서 5위로 올랐다.
 
반면에 서울과 그 인근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은 학력 수준이 대부분 떨어졌다. 10년간 서울의 우수 학생 비율은 12.3%에서 15.2%로 올랐다. ‘강남의 확장’인 성남·용인·과천도 우수 학생 비율이 증가했다. 그러나 2006년만 해도 서울보다 우수 학생 비율이 높았던 비수도권 지역은 모두 서울에 추월당했다.  
 
부산은 14.5%에서 11.3%로, 강원은 11.7%에서 7.6%로 하락했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강남구가 21.8%에서 29.4%로 오를 때 도봉구(11.7%→10.4%), 중랑구(6.7%→6%), 성북구(8.2%→7.9%) 등은 떨어졌다. 
 
서울대 합격 서울 1258명, PK·대구·광주·충북 합쳐 267명 
 
서울대 합격자만 놓고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강남과 비강남 간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2007~2018년 서울대 합격자는 경기도가 484명에서 720명으로 236명이 증가했고, 서울도 지난해 1258명으로 같은 기간 50명이 늘었다.  
 
반면 부산(91명), 대구(80명), 경남(41명), 충북(28명), 광주(27명) 등 비수도권은 줄었다. 서울만 놓고 봐도 강남구(20.4%)로의 쏠림 현상이 2007년(17.3%)보다 더욱 심화했다.
 
강남의 영향을 받는 인근 신도시의 학력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대치동 영향권’인 신도시에 부유한 계층이 모이고 이들을 따라 사교육 밀집 현상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과 분당에서 20년간 학원을 운영한 최승일 한국영재교육센터 원장은 “대치동 사교육이 분당·용인 등으로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인근의 판교신도시로도 부유층이 모여들고 있어 강남과 그 인근 지역의 학력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학부모들이 이들 신도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서울 접근성과 자녀 교육이다. 용인에 사는 이모(47)씨는 “수지에는 분당이나 대치동의 알아주는 학원들이 앞다퉈 분원을 냈다. 게다가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차로 30분이면 대치동에 갈 수 있어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오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교육 특구의 ‘입시 불패’가 누적될수록 지역별 학력 격차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특구의 확장이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를 점점 박탈할 것이라고 말한다. 잘사는 사람들은 계속 집값이 비싼 교육특구로 몰려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그 반대 지역은 상대적으로 더 낮은 교육 서비스를 받게 돼 학력이 낮아지는 것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의 지력과 재력이 자녀의 입시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모두가 대학에 ‘올인’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깨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강남이 생기면서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전민희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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