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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봉창, 그가 생명을 걸고 남긴 문서 한 장

중앙일보 2019.02.13 00:03 종합 25면 지면보기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
 
이봉창 의사가 1931년에 작성 한 선서문. [사진 문화재청]

이봉창 의사가 1931년에 작성 한 선서문. [사진 문화재청]

일본과 만주 등을 떠돌던 31세의 청년 이봉창(1900∼1932)은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뒤 1931년 12월 13일 이같은 내용의 선서문을 쓰고 서명했다. 수류탄을 양손에 들고 태극기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며칠 뒤 중국을 떠나 일본에 들어간 그는 이듬해 1월 8일 도쿄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던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이 일은 실패로 끝났다. 마차는 뒤집어졌으나 히로히토는 다치지 않았던 것. 청년 이봉창은 그해 9월 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고 짧은 삶을 마감했다.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이 의사가 일왕을 처단하겠다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선서문을 포함, 백범 김구에게 보낸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와 봉투’ ‘이봉창 의사 의거자금 송금증서’ 등 3건을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12일 발표했다. 특히 선서문은 이 의사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유물로,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 안공근의 집으로 데려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며 보낸 친필 편지. [사진 문화재청]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며 보낸 친필 편지. [사진 문화재청]

이 의사의 친필 편지와 봉투는 1931년 12월 24일에 이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지에서 이 의사는 의거 실행 계획을 암시하며 "다음달에 물품이 팔릴 것이다(…) 걱정 마시라”고 썼다. ‘의거 실행’을 ‘물품 판매’라는 말로 바꿔 쓴 것이다.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1931년 12월 28일에 김구 선생이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 도쿄에 있는 이봉창 의사에게 100엔을 보냈음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정인양 사무관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는 이봉창 의사에게 의거자금을 세 번에 걸쳐 부쳤다는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며 “현재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자료들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한편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에 기폭제가 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독립운동 전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만해 한용운이 1933년에 지은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 독립운동가들이 교류하던 곳이다.[사진 문화재청]

만해 한용운이 1933년에 지은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 독립운동가들이 교류하던 곳이다.[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서울 성북동 유택인 심우장(尋牛莊)을 사적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심우장은 만해 스님이 1933년에 건립해 여생을 보낸 집으로, 독립운동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김용식 사무관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던 일송 김동삼(1878~1837) 선생이 1937년 3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을 때 유해를 심우장으로 옮겨와 5일장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독립운동가들이 모이던 공간이었다는 설명이다.
 
‘심우(尋牛)’란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잃어버린 나(本心)를 찾는다’,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현판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서예가 오세창(1864~1953)이 썼다.
 
이 집은 한옥을 지을때 남향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동북향인 것이 특징이다. 만해는 조선총독부가 있는 방향을 피해 이렇게 북향 터를 선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봉창 의사 선서와 유물,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은 30일간의 예고 기간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각각 문화재와 사적으로 등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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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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