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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할아버지가 캐디한 그곳서…미켈슨 우승

중앙일보 2019.02.13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49세의 베테랑 미켈슨. 외할아버지가 100년 전 캐디로 일했던 페블비치에서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이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가 바로 미켈슨이다. [USA TODAY=연합뉴스]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49세의 베테랑 미켈슨. 외할아버지가 100년 전 캐디로 일했던 페블비치에서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이 골프장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가 바로 미켈슨이다. [USA TODAY=연합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명 코스인 페블비치는 1919년 2월22일 개장했다. 당시 캐디 중 한 명은 만 11세의 알 산토스였다. 그의 가족은 포르투갈 출신으로 페블비치가 있는 몬터레이 반도에서 고기를 잡았다. 아이가 신발 바닥이 닳아 헤져도 새로 사지 못하고 나무판자를 대고 다녀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산토스는 이른 새벽 골프장에 갔지만 허탕을 치는 날도 많았다. 운이 좋아 가방을 메게 되면 캐디피로 35센트를 받았다. 팁으로 10센트를 더 받으면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이 돈으로 곤궁한 가족의 살림을 도왔다. 
 
산토스는 1900년에 발행된 1달러짜리 동전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 동전은 쓰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느낄 때마다 동전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페블비치 개장 후 100년에서 딱 열흘이 모자란 12일, 필 미켈슨(49.미국)이 이 골프장에서 우승했다. 최종라운드 7언더파 65타를 쳐, 합계 19언더파로 폴 케이시(영국)에 대역전승을 거뒀다.  
 
승리가 확정된 18번 홀 그린에서 미켈슨은 은색 동전을 꺼내서 자신의 캐디이자 동생 팀 미켈슨에게 보여줬다. 형제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미국 골프 채널은 “미켈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켈슨이 사용한 것과 같은 1달러 동전. [중앙포토]

미켈슨이 사용한 것과 같은 1달러 동전. [중앙포토]

100년 전 페블비치의 캐디 알 산토스는 미켈슨의 외할아버지다. 미켈슨이 동생에게 보여준 건 외할아버지가 배고픔을 참으면서 간직한 바로 그 동전이다. 미켈슨은 외할아버지가 주신 유품을 그린 마커로 썼다. 혹시 잃어버릴지도 몰라 일반 대회에서는 똑같이 만든 동전을 사용했다. 그러나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만은 모조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주신 진짜 동전을 사용했다.  
 
 
미켈슨은 "할아버지가 쓰던 것일 뿐만 아니라, 골프의 상금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게 해주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미켈슨은 PGA 투어에서 총 44승을 했다. 그 중 할아버지가 주신 진짜 동전을 들고 경기한 페블비치에서의 우승이 5번이다. 미켈슨이 가장 많이 우승한 대회가 페블비치 프로암이다. 또한 페블비치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가 미켈슨(마크 오메라와 타이)이다.
 
 
미켈슨은 "할아버지는 페블비치 골프장의 초창기 모습과 골프에 대해 얘기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미켈슨은 “이 곳은 특별하다. 여기 올 때마다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준 골프 코스에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미켈슨이 골프 선수가 된 것은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 생전, 미켈슨은 우승할 때마다 18번 홀 깃발을 챙겨 선물로 가져다 드렸다. 그러나 미켈슨은 많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우승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일반 대회 말고, 메이저 우승 깃발을 보고 싶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미켈슨이 첫 메이저 우승(2004년 마스터스)을 거두기 한 달 전인 2004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이후 미켈슨은 메이저대회 5승을 했다. 그러나 US오픈에서는 우승을 못했다. 2위를 6번 하는 등 불운이 잇따랐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미켈슨에게는 US오픈이 한이 서린 대회다.   마침 올해 US오픈은 6월 페블비치에서 열린다. 페블비치 개장 100주년을 기념해서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있는 페블비치에서 행운의 동전이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은 잭 니클러스, 타이거 우즈 등 5명만이 갖고 있는 기록이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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