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누굴 닮아 그러니~" 애 키우며 자꾸 하게 되는 이 말

중앙일보 2019.02.12 11:00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8)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얼마 전 같이 아이를 키우는 언니와 대화 중에 내가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친정엄마가 나에게 쓰던 말을 똑같이 쓸 때 흠칫 놀라곤 해. 별로 닮고 싶지 않은 부분인데, 내가 정말 똑같이 그 말을 하고 있더라”고 하니 언니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나만 그런 게 아니야?”하고 몇 가지 문장을 말해주니 “맞아, 맞아”라며 똑같다고 했다. 그저 친정엄마의 말투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면 저절로 나오는 요즘 아이들의 ‘급식어’ 같은 ‘육아어’가 있겠구나 싶었다. 기억에 남는 육아어 몇 가지.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해라.”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적당히'를 모르는 눈치 없는 아이들은 기어코 혼이 나고야 멈추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기 전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한 번 더 진정시킬 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보내는 최후의 통첩 같은 말이다. 입을 많이 벌리지 않고 윗니 아랫니를 붙이고 말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게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장난감을 종일 어지르는 아이와 지금 치워봤자 30분 안에 원상복구 될 것을 알면서도 또 치우는 나. 지난날 방 좀 치우라는 엄마에게 “왜 꼭 지금 치우래?”라며 엄마 속을 터지게 한 벌을 받는 건가 싶다.
 
신랑 퇴근 시간은 다가오고 이제 정말 마지막 정리를 끝내고 인제 그만 육퇴를 하고 싶은데, 설거지하는 사이 방을 폭파해놓고 여전히 해맑은 아이 모습에 약이 오를 때 참다 참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말이다. 함께 쓰기 좋은 말로는“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라는 말이 있다.
 
“누굴 닮아서 이래?”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누굴 닮았냐며 난데없는 유전자분석까지 들어가는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다. 강력한 고집을 부리거나, 몇 번이고 알려준 걸 기억하지 못할 때, 때로는 소름 끼치게 날 쏙 빼닮은 행동을 할 땐 혼내면서도 뜨끔하다. 답을 아는 건 난데 누굴 닮아 이러냐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인가보다. 모두 다 내 탓이오.
 
“도깨비 온다. 도깨비와.”
대체 도깨비는 왜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본 적도 없는데. 아이에게 겁주며 훈육하기 싫지만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이만한 게 없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도깨비를 부르고 만다. 도깨비는 남편보다 어느 면에선 나은 육아 파트너다. 사실 나 어릴 때는 도깨비보단 망태 할아버지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산타할아버지한테 다 말해?”
12월 한 시즌 잘 써먹을 수 있는 멘트다. 산타할아버지가 다 보고 있다고 하면 바르고 착한 행동만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순수하다 싶기도 하지만, ‘와 이렇게 할 수 있는 애가 그동안 안 했나?’ 싶어 말 잘 듣는 아이 모습에 살짝 약이 오르기도 한다.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이건 너무 뻔한 말이다 당연히 내 자식이 제일 예쁘고 귀하고 사랑스러우니 너무나 흔한 말이지만, 아이를 낳고 자는 아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든지 아이의 속눈썹 한 올 한 올조차 신비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아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절부터 소곤소곤 “사랑해”하고 아이 귀에 속삭여 주면서 이제껏 내가 누군가에게 말해왔던 “사랑해”와는 차원이 다른 “사랑해”를 알게 되었다. 정말 사랑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사랑은 이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가 싶다.
 
위에 나열한 여러 가지 피가 거꾸로 솟고 내 안에 다른 나를 자꾸만 튀어나오게 만드는 뚜껑 열리는 상황을 싹 잊게 하는 아이의 미소, 엉뚱한 말, 무언가 열심히 하는 모습, 평화롭게 자는 모습, 순진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뱃속에서부터 간질간질 차올라 목구멍으로 “사랑해”라는 말이 쏘옥하고 터져 나온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도 ‘육아어’에서 사라지지 않을 말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육아란 한없이 나를 지치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면서도 또 말도 안 되게 행복함을 주는 날들의 연속이다. 하루도 잔잔하게 지나는 법이 없고, 미웠다가 사랑했다를 하루에도 백번은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것이 육아다.
 
그래도 언제나 마지막은 그런데도 정말 사랑해 로 끝나기 때문에 아마도 나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 시절부터 이어진 가장 주옥같은 육아의 명대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하니까 엄마도 내일 더 잘 버텨내 볼게’하고 때로는 다 내려놓고 혼자 도망치고 싶은 나에게 스스로 속삭이는 주문 같은 말이다.
 
장윤정 주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장윤정 장윤정 주부 필진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 마냥 아이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