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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법정에선 이규진 ‘대(大)’자 수첩 방어 가능할까

중앙일보 2019.02.11 16:10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검찰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심사를 마치고 검찰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재판에 넘겨지면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간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고된 상태다. 지난달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이 소명됐다”는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만큼 양 전 대법원장은 무죄 판단을 얻기 위해 검찰이 지금껏 확보한 증거와 진술을 뒤집어야 한다.
 
양승태, 15층 조사실 아닌 법정서 검찰과 공방
전직 사법부 수장 입장에선 이제 ‘본 경기’에 돌입한 셈이다. 그에겐 서울중앙지검 15층 조사실보다 법정에서의 공방이 더 익숙하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첫 검찰 소환통보를 받았을 때부터 재판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은 처음부터 구속을 감수하고서라도 검찰 조사에는 제대로 응하지 않고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려는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진술조서 검토에 공을 들인 점도 일찌감치 재판 준비에 돌입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는 이례적으로 조사가 예정돼있지 않은 날에도 검찰청에 나와 조서 열람을 했다. 또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도 조사를 받은 후에는 수 시간에 걸쳐 조서를 읽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은 조사받은 시간보다 조서 열람 시간이 더 길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규진 수첩’, ‘판사 블랙리스트’ 등의 물증과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을 유죄 입증의 결정적 증거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업무수첩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가른 ‘스모킹건(핵심 증거)’으로 꼽힌다.
 
이 수첩에는 대법원장 지시 사항이라는 뜻의 ‘大(큰 대)'자가 여러 번 등장한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수첩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첩 내용이 사실이라는 이 전 위원의 진술을 이미 받았다”며 “변호인단이 검찰 증거가 탄탄해 깨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전·현직 법관 증인으로 불러 무죄 주장할 듯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는 증인이 대규모로 신청될 가능성이 높다.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검찰에서 진술한 참고인들의 진술조서는 증거로 활용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전·현직 판사 수십 명이 증인으로 나와 증인신문을 받게 될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실무진들이 알아서 한 일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만큼 후배 법관들이 진술을 번복해야 무죄 입증이 가능하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단은 이 전 위원을 법정으로 부른 뒤 반대신문을 통해 업무수첩의 증거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11일 오후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계속 부인하는 만큼 자신의 진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실무진들을 법정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며 “검찰이 참고인 진술로 증거를 뒷받침하는 상황에서 증인신문 결과에 따라 증거가 깨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이전 정부 청와대 관계자가 증인으로 나올 수도 있다. 검찰은 앞서 김 전 실장,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을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개입과 관련한 진술을 받기 위해 여러 차례 소환 조사했다.
 
임종헌도 후배 법관 진술 활용에 부동의 
앞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규진 전 위원의 조서를 증거로 활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이 전 위원 등을 증인으로 채택한 상황이다.  
 
한편 검찰은 재판 단계에서 일부 진술이 번복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 전 위원의 업무수첩 외에도 판사들이 ‘윗선’의 지시를 받고 주고받은 이메일 등 객관적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법관들이 진술을 번복할 경우 위증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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