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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우리 권리를 지키는 일, 세상을 바꾸는 일‧‧‧아동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중앙일보 2019.02.11 10:20
소중 친구 여러분은 지난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요.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었나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읽고 싶은 책을 봤나요? 다른 친구와 비교하는 말이나 차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또 하지 않고 보냈나요? 갑자기 웬 뜬금없는 질문이냐고요. 이게 다 여러분이 아동으로서 가지는 권리와 관련이 있는 거랍니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권리를 가지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 주변에는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또래 친구들도 있죠. 지금부터 그 친구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김현정 기자‧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청소년페미니즘모임, 그림‧자료=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아동보고서 집필진, 동행취재=지나현(서울 용강중 1)‧최치원(세종 글벗중 1) 학생기자
 
 
여자든 남자든, 가난하든 부자든,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죠. 이를 인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의 인권이 인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아동‧청소년을 구제나 보호 대상이 아닌 인권을 가진 주체로 파악하려 한 것은 1959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아동권리선언이 처음이죠. 이후 1989년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아동 권리를 보장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비준(동의)해 유엔아동권리협약 당사국이 됐습니다. 이 협약은 국제법으로서 가입한 당사국을 구속하며, 당사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의무를 지고, 어떻게 아동권리를 지켜주고 있는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해야 하죠. 이때 국가뿐 아니라 NGO, 아동도 보고서를 제출하는데요. 정부가 나의 권리를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는지, 또는 아닌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죠.  
 
대한민국 아동들이 마주하는 아동권리 관련 이슈들은 한둘이 아닌데요.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2017년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14곳에서 총 1만7446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한 아동권리 조사결과를 프랑스 유니세프가 실시한 결과와 비교했습니다. 아동권리를 놀이와 여가, 건강과 위생, 안전과 보호, 생활환경, 교육, 참여와 시민권의 6개 영역으로 나누어 물어봤는데, ‘참여와 시민권’에서 가장 차이가 컸죠. ‘아동의 권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에 한국 아동은 18%만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프랑스 아동은 60%가 긍정했거든요. ‘내가 속한 지역(커뮤니티)을 좀 더 좋게 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질문에 한국 아동은 6%, 프랑스 아동은 60%가 그렇다고 했고, ‘우리 지역 의원이나 시장은 내 생활이나 우리 지역에 관한 내 의견을 묻는다’ 라는 질문에 한국 아동은 4%가, 프랑스 아동은 4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두고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동권리국은 "한국 아동들은 각자의 성장발달단계에 따라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해 보이며, 아동의 생각이 실제 의사결정과정에 반영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죠. 그럼에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아동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 아동이 처한 문제를 지적하고, 국가가 아동의 권리를 잘 지켜주는지 세계에 알리고 개선을 촉구했죠. 아동들이 참여한 보고서는 2월 사전심의를 거쳐 9월 진행될 대한민국 정부 본심의 때 주요 참고자료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아동권리국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정부를 만난 후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라고 불리는 권고사항이 발간된다"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강제성은 없지만 정부가 아동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정부가 권고사항을 행동에 옮길 수 있게 하는 데 더욱 힘을 실을 수 있다"고 설명했죠.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동들의 현실
 
지난 2018년 11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어린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아동보고서’(이하 아동보고서)를 만든 집필진 아동들이 주인공이었죠. 집필진은 아동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의견을 내고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아동권리 스스로 지킴이’(이하 지킴이) 중 참여를 희망한 23명으로 구성됐어요. 전국 만 10~18세 아동 394명이 국제아동인권센터‧유니세프한국위원회‧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도움을 받아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지킴이로 활동했죠.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기자회견'에서 아동보고서 집필진은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동'을 주제로 한 보고서의 권고사항을 실천할 것과 국회의 교육 관련 정책 개선 활동,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행될 것을 촉구했다.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기자회견'에서 아동보고서 집필진은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동'을 주제로 한 보고서의 권고사항을 실천할 것과 국회의 교육 관련 정책 개선 활동,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행될 것을 촉구했다.

 
집필진은 3년간 진행한 지킴이 활동보고서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된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국가보고서(이하 국가보고서)를 비교해 다양한 아동권리 침해 사례를 정리했어요.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동’을 대주제로 건강‧휴식‧여가, 시민적 권리와 자유, 공교육, 교육격차, 입시제도의 5개 소주제를 나눠 아동보고서를 작성하고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했어요.
아동 23명으로 구성된 집필진은 약 10개월 동안 여러 차례 워크숍과 소그룹 모임, 공유회 등을 거치며 인터뷰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동들의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동 23명으로 구성된 집필진은 약 10개월 동안 여러 차례 워크숍과 소그룹 모임, 공유회 등을 거치며 인터뷰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교육으로 고통받는 아동들의 목소리를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동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중‧고생의 연간 학습시간은 중학생 2097시간, 고교생 2757시간으로 어른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 2069시간보다 길어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인식과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사회 분위기, 교육제도로 인해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고 있죠. 집필진에 참여한 강가현(제주 아라중 2) 학생은 “소주제 중 ‘건강‧휴식‧여가’를 보면 공부 시간이 너무 많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싶다는 내용이 있는데, 저도 오후 9시 30분이 넘어 집에 오고, 밥 먹고 공부하면 시험기간이 아니어도 12시 이후에 잔다”고 말했죠. 박지영(강원도 원주여고 2) 학생도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고, 집에 있는 적은 시간마저 공부하느라 못 쉬는 경우가 많아 고통”이라고 덧붙였어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에 실린 집필진 그림.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에 실린 집필진 그림.

중‧고생뿐 아니라 초등학생‧영유아 학습시간도 증가하는 추세라 수면이나 운동시간도 부족해지고, 당연히 놀 권리도 보장받지 못합니다. 집필진이 아동·어른 147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시험기간에 공부도 해야 하고 수행평가도 하면서 성적 관리도 해야 하고 학원도 다니다 보니 여가시간은 많지 않다” “부모님께서 성적에 집착하시고, 예‧체능하는 사람들은 연습하기도 바쁜데 성적이 보통이 아니라 우수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에 놀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다” “일자리 부족 때문에 좋은 대학교를 진학해야 직장을 구할 수 있다 생각하고 또 이 문제로 과도한 학구열을 불러일으켜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공부하기만을 바란다”는 의견이 나와요. 아동들은 놀 권리 보장을 위해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어른들의 고정관념(50.9%)을 꼽았죠.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발간회 모습.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발간회 모습.

 
국가보고서를 보면 2016년 초·중·고 취학률은 90%에 달합니다. 아동의 삶의 질과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교육이지만 학생 개인의 특성·자질보다 성적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성적 압박이 크죠. 지영 학생은 “개인의 역량을 무시당하고 공부로 획일화되는 부분이 너무 억울해 이에 대한 의견을 내고 싶어 집필진에 참여했다”며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선 불필요한 내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정해진 일과대로 기계처럼 사는 것 같다”고 말을 이은 김경욱(인천 미추홀외고 2) 학생은 “내일은 뭘 할지 기대가 되기보다 여느 때와 똑같이 가게 될 학원 일정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얘기했어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집필진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집필진

 
3년간 지킴이 활동 후 집필진이 된 박승현(대전 문정중 1) 학생은 “학교 수업 대부분을 사교육을 통해 선행으로 미리 배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정부는 2014년 9월에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12월에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수립했는데요. 집필진 조사 결과 학생 660명 중 261명은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어요. 또 성적 위주의 입시제도로 인해 고통받고,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아동도 많았죠.  
 
“처음엔 입시제도가 아동의 권리와 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임수연(태백 황지여중 2) 학생은 “집필진 활동을 통해 입시제도와 교육으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아동들의 실태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어요. 집필진 설문조사 결과 성적 위주의 입시제도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받은 적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47.7%였죠. 소속을 살펴보니 초등학생이 13.3%, 중학생 41.3%, 고등학생 73.5% 순으로 상급학교로 갈수록 스트레스 또한 증가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가현 학생은 “개인의 특성을 무시한 입시제도는 꼭 바뀌어야 한다”며 대학교가 학생의 최종 목표라는 듯한 분위기가 없어지길 바랐어요.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집필진

제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아동보고서 집필진

국내 아동들의 권리 침해 상황과 정부에 대한 권고 사항을 아동보고서에 담은 집필진은 교육 이외에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부분으로 학교폭력, 학생인권조례 확대, 교육감 선거 참여 연령 낮추기, 나이·성 차별 문제 등을 꼽았는데요. 2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 또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 아동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켜보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고 입을 모았죠. 또 더 많은 아동들이 관심을 갖고 직접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추천했어요.
 
“세상에 한 번도 아동이었던 적 없는 사람은 없고, 자신 또는 주변인이 부당한 인권침해를 당하게 하지 않기 위해 아동의 권리도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 수연 학생은 이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항상 어린애가 뭘 할 수 있겠냐는 말만 들었는데, 아동이지만, 혹은 아동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자신의 권리를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거예요. 소중 친구 여러분도 아동으로서 활동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해보세요.”
 
 
 
 
학생이 고발하는 학교 성폭력 ‘스쿨미투’
2018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트위터 사회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뭘까요. 바로 스쿨미투입니다. 2위는 페미니즘, 3위는 몰카였죠. 학교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을 벌여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지난 1월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스쿨미투, UN에 가다’ 캠페인 발족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을 방문해 스쿨미투 실태를 알린다고 밝혔죠. 지난해 11월 유엔에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스쿨미투)에 관한 NGO보고서’를 제출한 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초청을 받은 겁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4조는 모든 형태의 성적 착취와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죠. 지나현‧최치원 소중 학생기자가 스쿨미투·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해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양지혜 운영위원, 김나윤 고교생 활동가와 만났습니다.  
지나현(왼쪽에서 둘째)·최치원(왼쪽에서 셋째) 학생기자가 학교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관련 운동을 해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활동가를 인터뷰했다.

지나현(왼쪽에서 둘째)·최치원(왼쪽에서 셋째) 학생기자가 학교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관련 운동을 해온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활동가를 인터뷰했다.

 
나현: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통해 구성된 여성 청소년 모임입니다. ‘이제는 성평등을 배우고 싶다’ 문화제, 딸들의 페미니즘 프로젝트, 학내 성폭력 실태조사, 성상품화 발언 관련 세미나, 청소년 페미니즘 기자단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요. 지난해 11월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도 열었죠. 최근 ‘스쿨미투, 유엔에 간다’ 캠페인을 거쳐 유엔에 가서 스쿨미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월 16일에는 스쿨미투 전국 집회도 계획돼 있어요.
 
치원: 특히 학교 성폭력 문제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지혜: 제가 고2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죠. 이를 겪으며 청소년 인권에 대해 고민이 커졌어요. 교내에서 농담처럼 하는 여성 품평이나 일상적인 폭력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거든요. “몰카 찍으니 잡아서 처벌해”가 아니라 “조심해”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 고민을 하다 졸업 후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나윤: 아직 학생이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학교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다는 현실에 ‘이게 아닌데, 잘못된 것 같은데’ 생각 들고 발언을 하게 됐죠.  
 
2018년 11월 3일 전국 규모로 열린 첫 번째 스쿨미투 집회 모습. 이후 지방에서도 스쿨미투 집회가 이어졌다.

2018년 11월 3일 전국 규모로 열린 첫 번째 스쿨미투 집회 모습. 이후 지방에서도 스쿨미투 집회가 이어졌다.

나현: 활동 중 제약이나 어려운 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세상에 맞서 싸우는 활동이기도 한데 무서웠던 적이 있는지요.
 
나윤: 확실히 아직 학생이란 점이 가장 힘들고 무서워요. 지금도 사진 찍히는 것을 걱정하죠. 학교에서 안 좋게 볼 수도 있고요. 학생 신분이 또래의 공감을 받기는 쉽지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데도 영향을 줘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네가 굳이 왜 해’란 주변 시선도 그렇고요.
 
지혜: 어른이 돼 좋은 건 학생 때 말하지 못했던 걸 말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아직도 고발이 이어지고, 공론화가 돼서야 가볍게 사과하고 넘어가거나 가해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죠. 고발자들은 많은 걸 걸고 고발해요. 실명으로 증언하기 어려워 고발 못 하는 친구도 있는데 간단한 사과로 끝나게 되면 좀 힘들죠.
 
나윤: 세상이 결국 똑같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 때 무서워요.
 
'스쿨미투 UN에 가다' 캠페인 중인 청소년들.

'스쿨미투 UN에 가다' 캠페인 중인 청소년들.

나현: 스쿨미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바뀐 게 별로 없다는 기사도 나왔는데요. 어떤 부분이 특히 그런가요.
 
나윤: 바뀐 것도 많아요. 처음엔 모두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하고 말하는 분위기,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죠. 다만 미투 운동이 계속되다 보니 익숙해지고, 내 책임일 것 같은 건 피하고, 오히려 예민하다고 돌리는 것 같아요. 분명히 바뀐 게 있는데 그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돌아가려고 하는 거죠. 그럼 편하니까요.  
 
지혜: 지난해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트윗된 말이 스쿨미투였어요. 11월 집회 땐 학생이 직접 나서서 자리를 만들고, 10여 명의 고발자가 거리에 나와 발언했죠. 어려운 시간을 딛고 일어나 연대할 것을 다짐하며, 그 물결은 인천‧충청 등 지방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되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있어요. 용화여고의 경우 졸업생까지 200명 가까운 학생이 성폭력이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가해 교사는 최근 불기소 처분을 받았죠. 학교에선 교사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고요. 정부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을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현: 스쿨미투 관련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초청을 받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 정부보다 국제사회에서 먼저 나선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지혜: 저희가 성명서를 통해 4가지를 요구했는데요. 학교폭력처럼 성폭력도 전수조사를 하는 것, 달라진 성인지 감수성에 맞춰 교원의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법 개정, 검·경의 적극적 수사 등이죠. 교육부 등 관계 부처가 미온적인 상황에서 국제사회에 알려 다시 국내에 환기시키는 포인트가 됐으면 해요. 우리가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는지, 학교란 곳에서 어떤 가해가, 힘겨움이 있었고, 그럼에도 학생들이 말하기를 이어가고, 그런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전하고 국제사회로부터 힘을 받는 거죠.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추가자료로 제출하기 위해 스쿨미투 고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모았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추가자료로 제출하기 위해 스쿨미투 고발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모았다.

 
치원: 페미니즘을 두고 너무 편 가르기 식으로 간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많고요.
 
나윤: 저도 그런 말 들어봤는데, 격렬하게 나타나는 운동의 겉부분만 보는 게 아닌가 해요. 흑인이나 장애인 인권 운동 보고 편 가르기라고 하지 않잖아요. 소수자가 권리를 침해당한 당사자니까요. 페미니즘은 여성 인권 운동이죠. 다만 여성이 소수자냐의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가 힘이라고 하죠.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건 보통 다른 사람이에요. 언제든지 뺏길 수 있는 힘인 거죠. 임금 격차나 경력 단절 등에서 임신할 수 있어서 여성을 배제하는 일도 많고요. 여성 투표권 운동을 하던 100년 전과 비교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은 소수자가 맞다고 생각해요. 가만 보면 진짜 편을 가르는 게 누구인가 생각하게 되죠. 결국 계속 공부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혜: 페미니즘이 퍼지는 만큼 워리어도 늘어난 영향이라고 봐요. 그동안 침묵해야 했던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게 필요합니다.
 
치원: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을 없애자는 거죠. 남성이라고 해서 페미니즘을 나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편견을 바로 잡는 운동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나윤: 지금 상식으로 보면 노예제는 말이 안 되잖아요. 한때 미국에선 노예제 철폐 운동을 하는 사람들 보고 사회악이라고 했어요. 결국 끝까지 나아간 이들이 사회를 바꿨죠. 지금 페미니즘 운동, 미투 운동 하는 사람들이 역사에 기록되는 시대가 곧 오길 바라요.  
 
치원: 앞으로의 각오와 소중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나윤: '대학 가면 끝나, 조금만 참아' 이런 말이 듣기 싫었어요. 학생 신분으로 활동하는 게 처음엔 힘들었지만 친구들 덕분에 힘을 얻었죠. 연대하는 동료들이요. 3~5명으로 시작한 교내 페미니즘 동아리가 있는데, 50여 명으로 늘었어요. 올해 활동 생각하면 설레요. 살고 싶은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같이 싸우고,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거죠. 더 배워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혜: 청소년기 친구의 피해 사실을 듣고 네 잘못이 아니란 말과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세월호를 비롯한 사고 등 누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체제에서 내 위치를 찾는 질문을 계속했죠. 꼭 거리에 나가 발언하고, 인터뷰하고 이런 것만 활동이 아니에요. 나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 지지하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을 하는 거죠. 지난해엔 한 사람의 용기가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걸 증명했다고 봐요. 세상을 바꾸는 일들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소중 학생기자 취재 후기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에 관한 궁금증을 풀며 저와 4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고교생 활동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야 했던 걸까요. 미투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너무 쉽게 하는 모습을 보며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미투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활동하며 어렵고 힘든 점이 많아도 계속할 수 있는 신념을 느끼고 응원하고 싶어졌죠.  -지나현(서울 용강중 1) 학생기자

 
학교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충격적이었어요. 그 피해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잘 몰랐던 여성 차별 사례를 들으며 남자인 나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죠.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를 잘 모르면서 나쁘다 나쁘다 하니까 나쁜 줄 아는 사람은 페미를 미워하는 대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해 나부터 소외된 사람은 없는지, 가해자를 묵인하는 일은 없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최치원(세종 글벗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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