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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기초수급자 윤씨를 부끄럽게 안 만들려면

중앙일보 2019.02.11 00:09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태호 복지행정팀 기자

김태호 복지행정팀 기자

“수급신청을 하러 갔는데, 제가 너무 어리더라고요, (얼굴이) 화끈거려서…. 엄청 부끄럽더라고요. 나보다 나이 많고 어려운 사람도 많은데.”
 
서울 마포구 고시원에 사는 윤귀선씨는 2017년 주민센터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러 갔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47세 때였다. 40대 후반에 국가에 의지하려는 자신이 창피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윤씨는 조부모도, 부모도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먹고 살기 힘들어 15세 때 전남 나주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중국집 배달원을 시작으로 건설 현장, 음식점, 자동차 정비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 하던 중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하자고 권했다. 그 말에 병원을 돌아나왔다. 통증은 지금도 계속된다.
 
기초수급자 윤귀선씨가 4년째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고시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정동 기자]

기초수급자 윤귀선씨가 4년째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고시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정동 기자]

중앙일보가 130명의 기초수급자를 설문조사했더니 80%가 질병을 앓고 있었다.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도 있지만 허리병이 가장 많았다. 노동력을 갉아먹는 병이다. 막노동도 할 수 없게 돼 결국 복지제도에 의존하게 됐다. 윤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왜 MRI를 두려워했을까. 비용(40만~70만원)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안 돼 본인이 다 내야한다. 윤씨는 “구청·동사무소에서 검사 비용 약 27만원을 보태주는데 나머지는 내가 내야하니까 찍을 여건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의 기초수급 수입은 한 달 70만원. 그 돈으론 치료에 엄두를 못 낸다.
 
윤씨는 건강검진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허리가 나빠지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예방도 못했고 병이 나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다. “아파도 버텼지만 몇 개월씩 고시원 집세를 못 내기 시작하고 허리가 더 아파오니 결국 수급신청을 했다”고 말한다.
 
만약에 윤씨가 허리 병이 나기 전에 사전 징후를 알았다면, 치료를 적절히 받았다면 계속 노동현장에 남았을 수도 있다. 윤씨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그는 “특별한 기술이 없고 별 재주 없이 지금껏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으면, 기술을 배웠더라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중산층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상태라면 윤씨는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보인다. 여기에 들어가는 복지 비용의 일부라도 질병 예방이나 치료에 쓴다면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 윤씨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게다. 극빈층으로 떨어지고 나서 다시 올라서는 걸 돕기보다 떨어지지 않게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게 당사자나 국가에게 훨씬 이롭다. 이게 진정한 복지 아닐까.
 
김태호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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