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 갉아먹었다”

중앙선데이 2019.02.09 00:20 622호 20면 지면보기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샹탈 무페 지음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한국에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주로 상대 진영을 비판할 때 무기로 쓰인다. 최근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가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국책사업을 발표한 것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공격했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이나 급속한 복지확장 정책을 비판할 때 어김없이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등 다른 대륙의 나라들에서도 포퓰리즘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대안당(AfD),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동맹 등 좌우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을 내세운 정당들이 득세 중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세계적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For a Left Populism)』란 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8월 발간된 이 책의 한국어판이 최근 나왔다.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이 웨스트민스터대 교수이자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인 무페는 포퓰리즘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것도 좌파 포퓰리즘을.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일단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좌파적이든 우파적이든 정치적 방편으로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결국 그 사회와 공동체, 국가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는 무페 교수의 생각은 단호해 보인다. 그는 먼저 ‘포퓰리즘에 대한 거부감’을 거부했다. 미디어와 주류 사회가 현상태의 유지(status quo)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깎아 내리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는 말에 경멸적인 의미를 부여해 왔다고 비판했다.
 
최근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자 포퓰리즘 논쟁이 불거졌다. 지난달 전철 사업 조사 면제를 촉구하는 포천 주민들. [연합뉴스]

최근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발표하자 포퓰리즘 논쟁이 불거졌다. 지난달 전철 사업 조사 면제를 촉구하는 포천 주민들. [연합뉴스]

그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헤게모니 구성체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1980년대 대처리즘에서 확산한 신자유주의는 탈규제, 민영화, 재정긴축을 토대로 한 시장원칙을 중시하고 국가의 역할을 사유재산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보호로 한정 짓는 데 목표를 둔 정치경제적 실천을 일컫는다. 무페는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평등과 대중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의 두 축이 침식되는 ‘포스트 민주주의’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좌파와 우파의 경계선이 희미해져 생긴 탈정치화(post-politics)는 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수용했기 때문에 조성됐다고 파악했다. 특히 민영화와 긴축은 중간 계급의 빈곤화와 불안정성을 불러 부유한 소수의 집단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했다고 인식한다.
 
무페 교수가 옹호하는 포퓰리즘의 계기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현상을 말한다. 빠르게 증가하는 불만족스러운 요구들로 인해 정치적 혹은 사회경제적 전환에 대한 압박에 처한 지배 헤게모니가 불안정해진 때가 왔다는 것이다.
 
무페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중도 좌파 사민주의자들이 포퓰리즘 계기에 처한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좌파는 이를 인지하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과두지배자들(the oligarchy)과 대중(the people) 사이에 전선을 만들어 대중적 집합 의지를 모아 새로운 헤게모니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민주적 가치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좌파가, 외국인 혐오 정서에 기대는 (서유럽) 우파 포퓰리즘마저 대승적으로 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는 민주주의를 철저히 제약하는 신자유주의의 국민주의적 권위주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파가 아닌 좌파가 주도해야 한다는 논리다.
 
무페 교수의 이러한 시각이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는 한국에서의 좌파 포퓰리즘 가능성을 묻는 중앙SUNDAY의 질문에 대해선 “한국의 정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 민주주의, 포퓰리즘 문제를 건드리는 무페 교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한국의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깊이 성찰해 볼 만한 텍스트임은 틀림없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