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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누가 자영업자를 내쳤나

중앙선데이 2019.02.09 00:20 622호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 감독의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제목부터 섬뜩하다.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 영화는 1975년 캄보디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생지옥에 내몰린 한 가족의 삶을 통해 킬링필드의 비극을 고발한다. 영화는 강제노동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다섯살 막내딸 로웅 웅의 눈을 통해 회고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가 극단적 공산화에 나서면서 캄보디아는 전 국민의 농민화가 추진된다. 집단농장에 도착하면 총칼을 찬 군인들이 섬뜩한 말을 쏟아낸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이제는 은행도, 상업도 필요 없다. 그러니 개인이 갖고 있는 물건은 모두 내놓아라. 입고 있는 옷도 모두 검게 염색하라.” 그러고선 끝없는 강제노동이 시작된다. 안경을 끼고 손이 곱다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킬링필드는 이렇게 캄보디아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이런 획일주의 공포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도 어른거린다. 세계 경제사에서 유례없는 이 정책 실험의 이념적 편향부터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단지 공약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의견은 무시됐다. 피해자가 속출해도 방향이 옳다면서 획일적으로 정책이 강행되고 있다.
 
“함께 잘사는 국가를 만들자”는 대의명분은 좋다. 소득을 늘려주면 저소득자의 소비도 늘어나 경제가 선순환한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소득 불평등을 강조한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하지만 2018년판  유엔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56개국 중 한국의 지니계수·팔마비율·퀀타일비율은 모두 낮은 편에 속한다. 이들 수치가 낮을수록 불평등·양극화가 덜 하다는 뜻이다.
 
이런데도 이 정부는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 최고”라면서 고용주 지불 능력과 무관하게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일자리를 더 늘리자면서 획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밀어붙이고 있다. 부작용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1% 대기업을 제외한 99% 중소기업이 인건비 부담 때문에 고용을 기피하면서 최악의 고용참사가 빚어졌다. 이 여파로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지면서 한국의 성장률은 2%대로 뚝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청년 못지않게 타격을 입은 피해자들이 690만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자영업자를 아버지로 둔 어린 딸이 있다면 누가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죽였는지 따지고 싶을 게다. 이들은 버티다 못해 지난해 8월 폭우 속에 광화문 광장에 뛰쳐나와 “최저임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소상공인연합회 대표는 느닷없이 수사를 받았고, 이 단체는 정부의 중소기업인 간담회에도 번번이 누락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 단체를 찾았지만 “최저임금 계획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폐업에 내몰린 자영업자는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왜 이들을 벼랑으로 몰아붙이는 건가. 이들이 쁘띠부르조아여서인가. 치킨집이나 식당이라도 하면 언젠가 큰돈을 굴릴 자본가가 되는 것이라고 보는 건가. 하지만 외환위기 충격과 고령화로 실직자와 베이비부머가 쏟아지면서 자영업은 레드오션이 됐다. 더구나 경제의 디지털화가 급진전되면서 자영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니 자영업이 붕괴하고 있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영화처럼 시장을 무시한 이념적 정책이 자영업의 붕괴를 가속화한 탓이다. 오로지 평등만 있다고 했던 크메르루주의 이념이 비극을 몰고 왔듯 일방적 정책이 자영업자를 내치고 희생양으로 만드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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