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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친족 사건 배제’ 권고 무시한 대법원장

중앙선데이 2019.02.09 00:20 622호 30면 지면보기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013년 ‘법관은 친족이 근무 중인 로펌 등 법률사무소의 사건을 맡지 말라’는 가이드라인(권고의견 8호)을 제시했다.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건을 수임한 로펌 변호사 가운데 배우자나 2촌 이내 친족이 있으면 무조건, 4촌 이내 친족이 있으면 가급적 재판에서 배제하라는 의미다. 법률상 법관이나 친척이 피해자이거나 피고인인 때 등 7가지가 법관 제척(除斥·직무집행 배제) 사유로 규정돼 있지만 그 틈새의 불공정 재판 우려를 차단하기 위한 보완적 조처다. 하급심인 1·2심 재판부는 이 권고를 제대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이 앞장서 무시하고 어물쩍 예외를 인정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지난해 10월 일제 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에는 김선수·노정희 대법관도 참여했다. 당시 일본 기업의 법률대리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였다. 김 대법관은 동생의 아내(2촌)가, 노 대법관은 조카사위(3촌)가 김앤장에 근무하고 있다. 대법원 권고의견에 따르자면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두 사람을 빼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조처는 없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권고의견 8호 수정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에 건의했으나 무산되자 두 대법관의 참석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어느 국가 기관보다 재판의 공정성과 절차적 정의를 준수해야 할 최고 재판소 수장의 행태로는 분명 부적절하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재판의 경우 대체 불가능한 전원합의체 선고라서 예외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김앤장이 패소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항변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선 결과 못지않게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다.
 
더 심각한 건 두 대법관뿐만 아니라 조희대 대법관은 딸과 사위가, 김재형 대법관은 부인이 로펌에 근무 중이라는 점이다. 또 헌법재판소의 이선애·이석태 재판관 역시 특정 로펌 출신이라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법원 재판과 헌재 재판의 공정성 문제는 언제든 재연될 개연성이 크고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사법부의 ‘이해충돌’ 문제를 해소할 기준과 잣대를 더 촘촘히 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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