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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지역 화폐와 포퓰리즘

중앙일보 2019.02.08 00:22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모란 사회팀 기자

최모란 사회팀 기자

몇 년 전 세뱃돈을 주다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 늘어나면서 늦게 도착한 조카에게 줄 현금이 없었다. 고민하다 5만원권 백화점 상품권을 줬다. 당시 막 6살이 된 조카는 “이모가 종이를 줬다”며 울먹였다. 결국 늦은 밤 세뱃돈 2만원을 찾기 위해 근처 편의점까지 다녀왔다. 현금과 같은 값어치를 지녔어도 직접 쓸 일이 없는 조카에게 백화점 상품권은 한낱 ‘종이’였다.
 
어찌 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지역화폐도 그렇다. 다른 지역은 물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선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도입한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 31개 모든 시·군이 각각 발행한다. 2022년까지 1조5905억원 상당의 지역화폐가 유통될 전망이다. 발행하는 지자체는 ‘지역 활성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니 그만큼 우리 지역 골목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설익은 기대감에서다.
 
각종 복지수당도 지역화폐로 주기로 했다. 경기도는 올해만 청년배당 1753억원, 산후조리비 지원 423억원, 각 시·군의 복지수당 1406억원 등 3582억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때 종이로 찍은 지역화폐가 불법 현금화 거래인 이른바 ‘깡’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청년수당을 최초 도입했던 성남시는 지역화폐가 인터넷 거래 사이트에서 매매되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최근엔 설 연휴를 앞두고 지역화폐 10% 할인 판매에 나섰던 일부 지자체가 ‘깡’을 막겠다며 단속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성남시는 지역 공립도서관에서 6권 이상 책을 대출하는 19세 청년들에게 2만원권지역화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논란이 되자 도서상품권을 지급하는 방안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포퓰리즘 행정이라는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역화폐 시장은 복지와 결합하면서 더 커질 전망이다. 올해 경기도에서 발행되는 지역화폐(4960여억원)의 70% 정도가 복지 관련 비용이다. 지자체들은 “지역 경제를 살리고 복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지역화폐의 장점을 홍보한다.
 
그러나 가맹점 확보나 인접 지역과의 교류 등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대안없이 남발되면 지역화폐는 ‘종이’ 수준을 면치 못할 게 뻔하다. 2014년 ‘강화사랑 상품권’을 도입했던 인천 강화군이 이용률 저조 등을 이유로 지난해 7월 상품권 판매를 중단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최모란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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