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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지구전론’ 다시 읽는 시진핑

중앙일보 2019.02.08 00:18 종합 30면 지면보기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미·중 무역전쟁이 해결의 가닥을 찾고 있다. 이달 중·하순의 막판 협상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는 베트남에서 한반도 종전선언과 별개로 무역전쟁의 종전이 이뤄질 것이란 성급한 예상이 나오는 연유다.
 
중국은 미국이 문제 삼는 국가전략 ‘중국제조 2025’를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킹 등 사이버 안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과연 중국이 백기를 든 것일까.
 
요즘 중국에서 자주 듣는 단어 중 하나가 ‘지구전’이다. 얼마 전 인민일보에 ‘마오쩌둥(毛澤東), 지구전론(원제 論持久戰)을 쓰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의미 없는 기사가 허투루 실리는 법은 없다. 현역 해군소장은 공개 석상에서 “미국과의 싸움에 지구전으로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화평굴기론’을 제기한 원로 학자 정비젠(鄭必堅)은 인민일보 기고문에 “우리에겐 지구전의 전통이 있다. 인내력이야말로 강력한 전투력이다”고 썼다. 베스트셀러 랭킹에는‘지구전론을 다시 읽다(重讀 論持久戰)’란 책이 상위권에 올랐다.
 
마오가 ‘지구전론’을 쓴 1938년은 일본이 만주와 광둥·화남을 점령하고 파상 공세를 펼치던 때였다. 하루빨리 침략자를 몰아내야 한다는 ‘속승론(速勝論)’이 중국에 퍼져 있었다. 생각을 달리한 마오는 “섣불리 싸우지 말고 시간을 벌면서 상황을 바꿔 나가면 최후의 승리는 중국에 있다”는 3단계 지구전론을 펼쳤다. 적이 공격해 오면 싸움을 피하며 힘을 빼는 전략적 방어(1단계)에 주력하고, 힘의 균형이 이뤄지면 전략적 대치(2단계)로 전환하며, 모든 조건들을 아군에 유리하게 바꾼 연후에야 전략적 반공(3단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오의 ‘지구전론’에서 일본을 미국으로 바꿔 보면 최근 중국의 기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국이 무역 협상에서 양보하는 자세를 보인 건 백기를 든 게 아니라 지구전의 1단계, 즉 전략적 방어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시진핑 주석의 비공개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중국측 관계자에 따르면 시 주석은 “조우전(遭遇戰)으로 시작된 무역전쟁을 진지전(陣地戰)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미국이 걸어 온 싸움에 끌려간 초반 상황을 조우전에 빗댄 것이다. 적의 전투력을 소모시키는 진지전 방책을 제시한 건 마오의 지구전과 일맥상통한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의 지구전 방략으로 항일전쟁에서 이겼다. 그 결과를 신봉하는 것일까. 2019년 시진핑의 중국은 80년 전  마오의 교범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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