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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기억 없애는 효소 발견...영화 '이터널선샤인' 현실 될까

중앙일보 2019.02.07 12:18
영화 '이터널선샤인'에는 아픈 기억만 선별적으로 지워주는 모티프가 등장한다. [사진 이터널선샤인 캡처]

영화 '이터널선샤인'에는 아픈 기억만 선별적으로 지워주는 모티프가 등장한다. [사진 이터널선샤인 캡처]

상처받은 기억을 선별적으로 없애주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모티프가 현실이 될까. 김세윤 KAIST 생명과학과 교수팀이 공포 기억에 무덤덤해지도록 우리 뇌를 조절하는 치료법을 발견했다.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를 제거한 것이 핵심이다.
 
연구진이 생쥐 뇌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IPMK를 없앤 결과, 학습을 통해 공포기억이 사라지는 ‘공포기억의 소거현상(extinction of fear memory)’이 빠르게 나타났다. 한국연구재단과 KAIST는 7일 이 같은 내용의 연구성과를 국내에 발표했다. 관련 논문은 지난달 28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학습의 일종인 ‘공포소거’...IPMK 없앴더니 소거효과 빨라져
 
연구진은 공포를 학습한 쥐의 유전자에서 IPMK를 제거해, 공포 소거 효과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공포를 없애는 학습이 더 효과적으로 일어났다. [중앙포토]

연구진은 공포를 학습한 쥐의 유전자에서 IPMK를 제거해, 공포 소거 효과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공포를 없애는 학습이 더 효과적으로 일어났다. [중앙포토]

연구진은 먼저 “공포는 현대인의 정신건강과 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며 “특히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난 후 생기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공포기억에 대한 심층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환자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치료를 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치료 타깃을 명확화하지 못해 이에 관한 기초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먼저 생쥐에게 소리 자극을 줌과 동시에 전기자극을 줘 공포기억을 학습시켰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유사하게 쥐는 소리만 들려도 전기자극에 대한 공포를 느끼도록 학습된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소리만 반복해서 들려주고 전기자극은 가하지 않았다. 이후 쥐는 소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학습함으로써 공포에 대한 기억을 지워나갔다.
 
유전자 녹아웃 기술을 이용하여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 특이적으로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를 제거했고(위), 그 결과 소리 및 전기자극으로 학습된 공포기억이 소거되는 능력이 현저하게 향상됐다(아래). [그래픽제공=한국연구재단]

유전자 녹아웃 기술을 이용하여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 특이적으로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를 제거했고(위), 그 결과 소리 및 전기자극으로 학습된 공포기억이 소거되는 능력이 현저하게 향상됐다(아래). [그래픽제공=한국연구재단]

그런데 쥐의 신경세포에서 IPMK를 제거했더니 공포 기억이 사라지는 효과가 더 잘 나타났다. 김세윤 교수는 “과거에는 공포를 그저 잊혀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공포는 학습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며 “생쥐의 유전자에서 IPMK를 제거해보니, 공포를 없애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공포를 빨리 잊는 것 외에 다른 학습능력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김세윤 교수는 “IPMK 효소가 제거된 생쥐의 뇌를 분석해보니, 대뇌변연계 속 편도체에서 신호전달 단백질의 일종인 ‘p85 S6K1’이 특이하게 증가해 있었다”며 “공포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곧 p85 S6K1 단백질의 정교한 활성조절을 통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향후 추가연구를 통해 공포기억에 관여하는 핵심 신경망에서 IPMK가 전기·화학 신호를 전달하는 시냅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해나갈 계획이다.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 녹아웃 생쥐의 편도체에서는 p85 S6K1 신호전달이 증가했다 (위). 또한 해마의 전기생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 녹아웃에 의한 시냅스의 후기-장기강화 현상이 더욱 강하게 유도됐다(아래). [그래픽제공=한국연구재단]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 녹아웃 생쥐의 편도체에서는 p85 S6K1 신호전달이 증가했다 (위). 또한 해마의 전기생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노시톨 대사효소(IPMK) 녹아웃에 의한 시냅스의 후기-장기강화 현상이 더욱 강하게 유도됐다(아래). [그래픽제공=한국연구재단]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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