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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맞을라 배에 책 숨기고 보이스피싱 조직원 잡은 시의원

중앙일보 2019.02.07 11:40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서 의원은 1200만원을 뽑아 사진으로 찍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보냈다.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서 의원은 1200만원을 뽑아 사진으로 찍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보냈다.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지난 1일 오후 3시 40분 대전 중구 대흥동의 한 병원 건물 앞. 서호영 대구시의원(50·자유한국당)이 택시에서 내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상의 속에는 두툼한 책 한 권이 숨겨져 있었다. 서 의원은 멀리서 자신에게 전화하며 오는 수상한 남성을 발견했다. 남성과 점점 가까워지자 서 의원은 "저 사람이다"라고 소리를 질렀고, 근처에 잠복해 있던 경찰 2명이 달려가 남성을 붙잡았다.
 

서호영 시의원, 보이스피싱 전화받고 대전행
1200만원 사진보내 속은 것처럼 보인 후 검거 도와
칼부림 대비 배안에 돈처럼 보이는 두툼한 책 넣어

이 남성은 서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1200만원을 뽑아 오라고 했던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대구 수성경찰서는 조직원 A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그러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을 한 혐의(절도)로 A씨를 구속했다.
 
서 의원이 뱃속에 책까지 감추고 대전까지 가서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에 도움을 준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운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운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 의원에 따르면 사건은 이날 그가 행사장에 가던 차 안에서 받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대구시의회 경제환경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서 의원은 이날 오전 11시 대구 동구 반야월시장 장보기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행사장에 도착하기 10분 전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라며 전화가 걸려왔다. 경기도에서 금융사기단을 적발했는데 서 의원 명의로 대포통장이 사용돼 하나은행 3000만원, 신한은행 4000만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휴대전화로 사건번호와 사건공문, 협조공문까지 보내왔다.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해당 공문은 위조된 공문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서 의원에게 "범죄에 연루됐다"며 보낸 사건공문장.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해당 공문은 위조된 공문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서 의원에게 "범죄에 연루됐다"며 보낸 사건공문장.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 의원은 보이스피싱을 의심하고 대구검찰청에 근무 중인 후배에게 연락해 공문장 확인을 요청했다. 후배는 "위조된 공문장"이라며 "전화는 중국에서 걸려왔다"고 확인해줬다. 행사 시간이 촉박해 그냥 전화를 끊으려던 서 의원은 일당을 검거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공문서까지 위조하는 등 수법이 지능적이어서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다. 
 
서 의원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은행으로 향했다. 조직원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통장 잔액 1200만원 뽑아 대전에 있는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 의원은 통화를 스피커 폰으로 전환한 뒤 대구검찰청 후배에게 경찰 동행 수사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사이 서 의원은 조직원의 말대로 1200만원을 뽑아 사진을 찍어 보냈다. 보이스피싱 직원은 서 의원이 속았다고 생각했고, 서 의원은 돈을 다시 은행 계좌에 넣은 뒤 대전으로 가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서 의원에게 대구에서 대전으로 오라며 기차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다.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호영 대구시의원(자유한국당)이 지난 1일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 조직원 검거를 도왔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서 의원에게 대구에서 대전으로 오라며 기차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라고 했다. [사진 서호영 대구시의원]

서 의원은 동대구역에서 경찰을 만나 대전행 기차를 탔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그의 경로를 지시했다. 우선 동대구역에서 대전역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달라고 했다. 기차표에 적힌 대전역 도착시간이 되자마자 중구 대흥동으로 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는 택시를 타고  대흥동으로 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요구하는 돈처럼 보이는 동시에 있을 지 모르는 칼부림에 대비해 두툼한 책을 배쪽에 감췄다. 서 의원은 "대전까지 가면서 가족 생각에 걱정도 됐지만 조직원을 검거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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