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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에도 혼밥 59세 "공사판 30년…결혼 꿈도 못 꿨다"

중앙일보 2019.02.07 01:00 종합 1면 지면보기
59세 기초수급자, 가난이 낳은 독거
기초수급자 임모씨가 설날 고시원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반찬은 김·김치다. 막노동판을 30년 떠돌다 결혼을 생각도 못했다. 긴 독거 생활에 몸이 망가져 노동력을 잃었고 결국 기초수급자가 됐다. 장진영 기자

기초수급자 임모씨가 설날 고시원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반찬은 김·김치다. 막노동판을 30년 떠돌다 결혼을 생각도 못했다. 긴 독거 생활에 몸이 망가져 노동력을 잃었고 결국 기초수급자가 됐다. 장진영 기자

설날인 5일 오전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고시원 4층. 기초생활수급자 임모(59)씨의 3.3㎡ 방에는 TV 설 특집 소리가 가득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임씨는 고시원 공용 밥솥에서 밥을 퍼왔다. 반찬은 김치와 김이 전부다. 쟁반에 신문지를 깐 게 밥상이다. 여러 번 사용했는지 신문지에 김칫국 자국이 나 있다.
 

2019 빈곤리포트 <중>
가난이 낳은 독거, 59세의 삶
치과 못가 윗니 없고 아랫니 6개뿐
마흔 넘자 병치레, 결혼 아예 포기
수급자 64%가 미혼·별거·이혼

기자가 "설날인데 뭘 드세요"라고 묻자 "특별한 반찬이 없는데 뭐하러…"라며 얼버무렸다. 그는 "명절에는 밥 사먹을 데가 없다"며 말없이 밥을 먹는다. 임씨는 윗니가 하나도 없고 아랫니는 6개만 남았다. 돈이 없어 치과에 못 간다. 평소에는 카레나 라면을 주로 먹는다. 그는 혼자다. 그리 산 지 약 40년, 이 중 30년은 전국 공사판 떠돌이 인생이었다. 설날 연휴 내내 그를 찾는 이가 없었다. 임씨도 갈 데가 없다. 설날은 더 임씨에게 불편한 날이다. "왜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20대 때는 잠깐 결혼을 생각했어요. 근데 지방에 일을 다니니까 여성을 만나기 힘들고, 시간이 흘러 결국 포기했죠. 명절 같은 날에는 공허감이 더 큽니다. 지금은 (결혼 안 한 걸) 많이 후회하죠. 아내 독촉 받고 집에 가는 친구를 보면 부러울 때가 있지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임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16일이다. 그는 지나간 삶을 잘 털어놓지 않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다. 부모는 고무 공장에서 일했다. 벌이는 변변찮았고 임씨 6남매는 배를 곯는 일이 잦았다. 그는 "고교 졸업 후 공사장 막일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건설 현장에 매일같이 나간다고 해도 전셋집 하나 얻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국 건설 현장을 30년가량 떠돌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이었다. 연애나 결혼을 꿈꾸기엔 현실이 버거웠다. “제대로 이성을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마흔 가까이 되면서는 아예 포기했고요.”  
 
40대 중반이 넘자 무릎 관절에 적신호가 왔다. 신문 배달로 바꿨다.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고, 30년 만의 정착이었다. 새벽 배달을 위해 일찍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와서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셨다. 10년을 그리 사니 당뇨병이 왔고, 합병증으로 번졌다. 손발이 저린 지 꽤 됐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이다. 혈액이 잘 돌지 않아 감각이 무뎌지는 병이다(좀 더 진행하면 발가락을 자를 수도 있는데 그는 이런 사실을 모른다).  
 
임씨는 약을 자주 빼먹는다. 어느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그는 "치료받아 봤자 낫는 것도 아니다. 통증을 완화하는 정도"라며 병에 몸을 맡겼다. 지난해 3월 신문 배달마저 힘들어졌다. 지난해 12월 기초수급자가 됐고, 생계비·주거비 지원금 66만원에 의지해 산다. 임씨는 "수급자에서 벗어난다 해도 (이 몸으로) 얼마를 벌 수 있겠어요. 지금은 수급자에서 벗아나는 게 두려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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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 큰형은 몇 년 전 숨졌고, 작은형은 결혼도 못한 채 건설 일용직으로 일한다. 누이들은 결혼해 경기도 어딘가에 산다. 가끔 작은형과 연락한다. "누나들과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됐어요. 이렇게 사는 거 보여주기 싫어서요." 임씨의 가난이 독거를 낳았고, 독거가 질병을 악화시키고 노동력을 앗아갔다. 결국 극빈층으로 떨어졌다.  
 
빈곤과 독거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중앙일보가 기초수급자 130명을 설문조사했더니 1인 가구가 83명(63.8%)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2017)에 따르면 중위소득 60% 미만 저소득 가구의 53%가 독거가구다. 중위소득의 60% 넘는 가구(19%)보다 훨씬 높다. 중앙일보가 기초수급자 14명을 심층 인터뷰했더니 4명은 미혼이었고, 나머지는 이혼·별거 상태였다. 모두 가족과 거의 연을 끊은 채 고립돼 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인구학자들은 40대 후반까지 결혼을 안 하면 '평생 미혼'으로 분류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45~49세 남성 미혼율은 95년 1.3%(여성은 1%)에서 2015년 13.9%(여성은 6.4%)로 늘었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면 교육 기회가 적고, 좋은 직장에서 멀어지며, 결혼할 여건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평생 혼자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배우자나 자식마저 어려운 환경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가계가 충격을 받으면서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생활이 더 어려워져 극빈층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서울 강북에 사는 정모(68)씨는 옷가게를 운영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부도가 났다. 사채를 끌어써 빚이 1억원 넘게 생겼다. 이 과정에서 이혼했다. 혼자서 월 100만원을 받고 식당 일을 하며 10년간 빚을 갚았다. 아직 다 갚지 못했고, 망막·팔에 탈이 나면서 지난해 기초수급자가 됐다. 월세 1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산다. 집에 친구를 부르지 않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의 빈곤은 가장으로서 능력이 없음을 뜻한다. 사회보장제가 잘된 나라는 저소득층의 소득 대비 출산율이 중산층보다 높다"며 "한국은 저소득층 출산율이 낮다. 돈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다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청년층은 가치관 변화에 따라 미혼이 되지만 40~50대는 경제력 영향이 크다. 특히 남자가 그렇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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