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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국립현대미술관장 인사가 불편한 이유

중앙일보 2019.02.07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이번에도 코드 인사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히 정부와 철학이 맞는 코드인사일 뿐 아니라, 그를 위해 꼼수를 동원했다. 엄정한 공모 절차를 무력화시키고 형평성과 룰을 깼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얘기다. 문체부가 실시한 관장 공모에서 최종 후보 3인에 오르는 순간부터 강력한 내정설이 나온 인물이기도 하다.

문화계 ‘캠코더’ 인사 논란
원칙 깬 꼼수 인사로 이어져
전 정부 블랙리스트 사태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윤 신임 관장은 근대미술 전문가이자 민중미술계를 대표하는 평론가·교육자·기획자다. 1980년대 현실참여미술인 동인인 ‘현실과 발언’의 창립 멤버 출신으로 줄곧 민중미술에 투신해왔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책임큐레이터로 참여하면서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의 걸개그림 ‘오월세월’이 문제 되어 잠시 큐레이터 자리를 사퇴하는 등 고초도 겪었다.
 
그러나 조직을 이끄는 행정가 경험이 없고, 특히 현대미술 흐름과는 거리가 멀며 해외 네트워크가 약하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된다. 이번 관장 공모에서도 그 점은 드러났다. 윤 관장 등 최종 후보 3인이 결정되자 문체부는 이례적으로 인사혁신처에 고위공무원단 역량 평가 면제를 요청했다. 미술계 인사들에 따르면 고위공무원단 역량 평가는 제도권 미술관에 대한 경영 감각이 없을 경우 통과하기 어려운 테스트다. 특정 후보 봐주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문체부는 역량 평가를 실시했고, 낙제점을 받은 윤 관장은 탈락했다. 이때 ‘우수’ 등급으로 평가를 통과한 후보가 나왔는데도 문체부는 재평가를 요청했다. 재도전의 기회를 잡은 윤 관장이 선발됐다. 국현 관장 선발에서 역량평가를 두 번 치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미술계 인사는 “코드 인사가 없을 리 없다는 생각은 했지만 방식이 참 졸렬하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탈락자에게 기회를 줬을 뿐 재평가에 정치적 배경은 없다” “예술을 다루는 단체로 공무원용 역량 평가는 중요한 절차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옹색한 해명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오픈한 청주관까지 4개 관을 거느린 아시아 최대 규모 미술관, 올해 예산만 632억원의 대형 기관이다. 거기에 ‘국현의 세계화’를 내건 전임 외국인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았고, 최근 기업 운영 미술관들의 활동이 위축되면서는 국제 미술의 교차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국현 관장직이 ‘관리자 아닌 예술가’라는 문체부 측의 얘기가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지 의문이다.
 
문화참견 2/7

문화참견 2/7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양혜규씨 역시 이번 공모 초기에 차기 관장의 요건으로 “새로운 경향과 인물에게 기회를 주는 멘토쉽을 발휘하는 확장된 여성성, 관료적 행정과 맞짱 뜨는 한편 고급 행정인력을 길러내는 전문성, 정권교체마다 미술계 전체가 몸살을 앓지 않게 하는 독립성”을 요구하면서 “최종 후보 3인에 적임자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은 또 있다. 현재 방통위가 새 사장을 공모 중인 EBS의 경우다. EBS는 최근 두 달째 사장직이 공석이다. 새 정부 들어 취임한 KBS 출신 장해랑 사장이 전임 사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물러난 다음, 지난해 12월 사장 공모를 했으나 1차 공모에서 합격자를 내지 못하고, 재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 비서실장 출신인 장해랑 사장은 1차 공모에 나서며 연임 의지를 다졌다. 당시 장 사장과 함께 최종후보 4인에 올랐던 한 방송인은 “방통위 최종심사 후 여러 루트로 점수로는 내가 1등이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갑작스레 적격자가 없다며 공모를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방송가에는 장해랑 사장 재임 카드를 검토했으나 여론이 좋지 않자 아예 선임 보류 결론을 냈다는 설이 꾸준히 나돌았다(그는 KBS에 유리한 밀실협약을 맺어 EBS 구성원들로부터 사퇴요구를 받았다. 때마침 EBS 미디어의 김정은 위인 인형 논란도 불거졌다).
 
이처럼 최종면접까지 진행했다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재공모를 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방통위는 그런 결정의 이유도 일절 밝히지 않았다. 직후 전국언론노조 EBS 지부는 방통위의 ‘밀실심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방통위의 이런 ‘깜깜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함량 미달의 낙하산 사장들을 양산해왔고 선임 과정에서 ‘언론계 유력인사 커넥션’설 등 무성한 뒷말과 의혹만 키웠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방통위의 코바코 사장 공모 과정에서도 ‘심사는 요식행위, 답정너(답은 너로 정해져 있다)’ 논란이 일었다. 현재 코바코 사장은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김기만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다.
 
문화계 코드 인사 논란은 진보 좌우를 막론한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체위 소속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문체부 산하 33개 기관 임원 중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가 31%(249명 중 76명)에 이르고, 특히 9개 문화·예술 기관에선 50%(72명 중 36명)에 달했다. 바른미래당이 340개 정부 공공기관 인사 현황을 분석해 나온 캠코더 비율 22%(1651명 중 365명)를 웃도는 수치다. 그만큼 문화계 편중 인사가 심하다는 뜻이다. 면면을 보자면 진보진영의 실력파 인사들도 있지만, ‘듣보잡’에 가까운 낯선 이름도 눈에 띈다.
 
정부의 ‘통치 철학’을 공유하는 코드 인사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해도, 꼼수와 편법을 동원하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이들에 대한 논공행상 보은 인사는 다른 문제다. 이게 전임 정부의 발목을 잡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뭐가 다른가. 적이라면 무조건 배제하는 블랙리스트나 아군이라면 무조건 챙기는 화이트리스트나 거기서 거기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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