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상언의 시선] 카이로대와 그리스 올리브, 국가가 할 일을 묻는다

중앙일보 2019.02.07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카이로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재학생이 26만 명이다. 학생 수가 서울대 열 배다. 교지(校地) 면적은 서울대가 40%가량 넓다.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 학교 학생이라는데, 도통 학교에 가지 않는 젊은이를 카이로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과제물 제출 한두 번으로 학점을 받는다고 한다. 학생 수 폭발적 증가는 1990년대에 무바라크 정권이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 열망’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카이로대 학생 26만, 그리스 올리브는 이탈리아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 나라 국민은 고달프다

카이로에는 차가 많다.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차들이 줄지어 다닌다. 대중교통은 형편없다. 서울과 면적이 비슷한 카이로에 지하철역이 61개뿐이다. 서울엔 2호선 역만 51개다. 자동차 연료 값이 1ℓ에 약 400원이다. 많이 올라서 그 정도다. 8년 전엔 150원이었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연료비 부담을 낮췄다. 2011년까지 30년을 집권한 무바라크 정권은 ‘마이카(my car) 시대’를 열었다고 자랑했다.
 
너도나도 명문대에 가고, 오너 드라이버가 됐으니 그만큼 ‘함께 잘사는 나라’가 됐을까. 아랍권 최고의 대학이었던 카이로대는 세계 대학 중 800~1000등 하는(‘더 타임스’ 평가) 곳이 됐다. 사실상 등외(等外)다. 이 학교 졸업장은 별로 쓸모가 없다. 큰 부자의 자제는 외국 대학으로, 약간 부자 자녀는 이집트 내 외국계 대학(아메리칸 유니버시티, 브리티시 유니버시티 등이 있다)으로 간다. 낡은 승용차들은 카이로를 교통지옥으로 만들었고, 대기 질은 최악이다. 이집트 정치인들도 이런 문제를 안다. 그렇다고 카이로대 정원을 줄일 수도, 기름값을 많이 올릴 수도 없다.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집트와 더불어 문명의 발상지에 속하는 그리스. 이집트에 비하면 부자 나라이지만 유럽에서는 빈국이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미 부도났다. 학자들은 흔히 이 나라 살림을 거덜 낸 주범으로 공공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꼽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지출이 너무 많았다는 것은 수입(세수)이 적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경제 상황이 나빠 세금 걷을 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수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리스의 대표 산업은 올리브다. 전 세계 올리브 중 30%가량이 그리스산이다. 그런데 그리스 올리브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세계에서 유통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중 그리스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다. 그리스 올리브의 품질이 나빠서가 아니다. 좋은 올리브들이 가공되지 않은 원 상태로 수출돼 ‘메이드 인 이탈리아’ 올리브유나 올리브 병조림이 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보다 못한 EU가 2년 전 기금을 조성해 그리스 올리브 가공과 유통을 돕기로 했다. 그리스 농가 소득을 올리는 게 EU 보조금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올리브 재배 농가들의 모임도 돈을 거두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스 정부가 진즉 나섰어야 하는 일이다.
 
이집트·그리스보다는 훨씬 잘사는 프랑스. 정부 보조금이 수십 가지인데, 그중에 ‘학교 귀환 수당’이라는 것도 있다. 새 학년이 시작하기 직전인 9월 초에 나온다. 지난해 가을에 저소득층 가정에 초·중·고 학생 한 명당 각기 367유로(47만원), 388유로(50만원), 401유로(51만5000원)가 지급됐다. 아이가 셋이면 150만원 정도의 현금이 생긴다. 약 300만 가구가 대상이었다. 1년 치 학용품비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취지로 1974년에 만들어진 제도다. 상당수 부모가 그냥 용돈처럼 쓰는 현실이 문제가 돼 정부가 여러 차례 축소나 폐지를 검토했으나 실행은 못 했다. 정치인들이 차라리 그 돈을 낡은 학교를 새롭게 하는 데 쓰자고 외치다가도 선거가 다가오면 침묵했다. 다른 보조금 문제도 비슷하다. 이렇게 써야 할 데가 많으니 국가의 연구·개발(R&D) 관련 지출은 압박을 받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출 비율은 이웃 나라 독일보다 25%가 적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 때 “프랑스는 창조하고, 발명하고, 혁신을 이루는 나라였지만 2000년 이후에만 GDP에서 산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17%에서 12%로 줄었다. 그런데도 정치인이 한 것은 공공 지출 증가뿐이었다”고 한탄했다.
 
나만 잘살자, 일부만 잘살자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다들 함께 잘살자고 한다. 결국 문제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가 온갖 명목으로 보조금을 만든다. 도서관에서 책 빌리면 상품권 주겠다는 곳도 있다. 눈 뜨면 무슨 수당이 하나씩 생기는 지경이다. 그런데 보육시설 확충과 과학·기술 연구 등에 쓰는, 정작 미래를 위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린다.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로 가고 있나. 
 
이상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