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필리핀에서 되돌아온 플라스틱 쓰레기

중앙일보 2019.02.07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천권필 환경팀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설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3일, 컨테이너선 한 척이 경기도 평택항에 정박했다. 51개 컨테이너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1200t이 가득 차 있었다.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던 한국산 플라스틱 폐기물이 석달여 만에 국내로 되돌아왔다. 지난해 필리핀에 불법 수출한 폐기물은 총 6300t이다. 이 중  필리핀 민다나오섬 오로항 내 컨테이너에 보관된 폐기물이 먼저 반송됐다.
 
수출한 폐기물을 다시 가져온 것도 국제적인 망신이지만, 돌아온 불법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더 큰 문제다. 일차적으로는 폐기물을 수출한 업체가 돈을 내고 직접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문을 닫은 데다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가 폐기물을 대신 처리한 뒤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3일 평택항에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실은 선박이 입항해 있다. [뉴스1]

3일 평택항에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실은 선박이 입항해 있다. [뉴스1]

국내에서 쓰레기를 폐기하려면 t당 15만 원가량이 드는데, 운송비까지 포함하면 총 10억 원 이상 필요하다. 대집행하면 환경부가 70%, 지자체가 30%의 예산을 부담한다. 재산 압류 등을 통해 업체로부터 처리비를 회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세금을 들여서 폐기물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이날 되돌아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당분간 평택항에 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책임 주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평택시가 폐기물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평택시에서는 이미 수출 절차를 밟은 폐기물까지 지자체가 책임지는 건 어렵다며 맞선다.
 
이번 쓰레기 반송 사태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플라스틱 폐기물은 국내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EUROMAP)에 따르면, 국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2015년 기준)은 132㎏으로 플라스틱 생산 시설을 갖춘 63개국 중 벨기에, 대만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전체 소비량 역시 2015년 671만t에서 2020년 754만t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이어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환경 보호를 이유로 폐플라스틱 수입을 막는 추세다. 베트남과 태국, 말레이시아에서도 지난해 폐플라스틱 등 유해 폐기물의 수입금지 조처가 내려졌다. 폐플라스틱 수출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미국, 영국, 호주 등은 폐플라스틱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해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강력하게 규제한다. 우리도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는 대책을 속히 세워야 한다. 그게 불법 쓰레기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길이다.
 
천권필 환경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