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정치로 가린다고 블랙 스완과 회색 코뿔소가 사라지나

중앙일보 2019.02.07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위기는 아니라 해도 도처에 불안한 조짐들
지난달 22일 한국은행이 지난해 4분기 성장률 속보치를 발표하자 집권 여당이 흥분에 휩싸였다. 당초 예상(0.6~0.7%)보다 훨씬 높은 1%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2.7%로 잠정 추계됐다. 4분기 깜짝 성장에는 재정 확대가 크게 기여했지만 민간소비가 1% 증가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최저임금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반색했고, 여당 의원들도 입을 모아 “소득주도 성장으로 민간 소비가 늘어나는 등 경제 체질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신호”라며 추켜세웠다. 지난해 연말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해 경제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한숨을 쉬었던 것과 대비된다. 불과 한 달 만의 극적인 반전이다.

민주당, 4분기 깜짝 성장에 환호
1년 전 똑같은 헛발질 잊었는가
통계 왜곡 속 도처에 불안한 징조

반도체 특수 사라져 수출 급감
민간 소비도 인위적 반짝 상승
고용은 재정 투입으로 겨우 유지

부동산 빙하기와 중국 경제 침체
애플 쇼크처럼 시장은 복수한다
회색 코뿔소는 선제적 관리해야

 
이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예상보다 선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속보치에 대한 과대 해석은 금물”이라며 선을 긋는다. 한은의 성장률 통계는 세 가지가 있다. 분기가 끝난 뒤 28일 이내에 나오는 속보치, 70일 이내에 나오는 잠정치, 이듬해 발표되는 확정치가 그것이다. 잠정치와 확정치는 해당 기간의 생산·투자·소비·수출입 등을 모두 집계하는 공식 통계다. 이에 비해 속보치는 정부와 기업에 참고하도록 신속하게 내놓는 만큼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를 안고 있다. 가령 지난해 4분기 속보치의 경우 10~11월 경제 상황만 포함할 뿐 12월 동향은 담지 못한다. 실제 12월부터 곤두박질한 국내외 경기를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게 함정이다. 전문가들은 “3월 초 잠정치가 나오면 성장률이 0.1~0.2% 포인트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2010년 1분기 성장률은 속보치와 잠정치가 무려 0.3% 포인트나 차이가 났고, 2017년 1분기도 0.2% 포인트 차이가 벌어졌다.
 
 
 
지난 4분기 성장 서프라이즈의 함정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4분기 민간 소비 증가도 자세히 뜯어보면 추세적으로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단 정부가 쏟아부은 일자리안정자금, 아동수당 등 복지 지원이 민간 소비를 자극했다. 특히 소비 증가분 중에서 승용차와 연료 소비가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 이는 지난해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30%, 유류세를 15% 낮춘 덕분에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다. 의료 소비가 늘어난 것도 ‘문재인 케어’에 따른 한시적 효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경제 선순환에 따른 자연스러운 소비 확대가 아니라 감세와 복지·의료정책 변화에 의한 인위적인 현상이다. ‘반짝 상승’이란 것이다.
 
딱 1년 전에도 비슷한 통계 착시로 인한 민주당과 정부의 헛발질이 있었다. 2017년 4분기 가계 동향 조사에 소득 하위 20% 가구(1분위)의 소득이 10.1% 늘어났다. 여기에다 2018년 1월 취업자 증가 폭도 33만4000명을 기록했다. 민주당은 “소득주도 성장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다는 증거”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당시 통계 서프라이즈는 보통 3분기(7~9월)에 있던 추석 연휴가 2017년에는 4분기(10월)에 포함된 영향이 컸다. 이런 착시 현상을 무시한 채 정부와 민주당은 2018년 내내  최저임금 인상 등 폭주를 거듭하다 소득 양극화·고용 대란의 재앙을 맞았다. 1분위 소득은 지난해 내내 급감했다. 취업자 증가는 지난해 8월 3000명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빚었다. 소득주도 성장은 그 원흉으로 지목돼 몰매를 맞았다.
 
4분기 속보치 가운데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생산·투자의 위축이다. 생산·투자가 확대돼야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에 경제 불안 징조가 한층 짙어지는 추세가 불길하다. 경제학 용어 가운데 보통명사로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블랙 스완과 회색 코뿔소도 그중 하나다. 블랙스완은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일단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회색 코뿔소는 뻔히 보이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위험을 뜻한다. 올 들어 한국 경제에는 도처에 회색 코뿔소가 어슬렁거리고 언제 블랙 스완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위기는 아니라 해도 나라 안팎에서 불길한 징조가 어른거린다”고 말했다.
 
우선 한국 경제의 단발 엔진이던 수출 전선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감소해, 지난해 12월(-1.2%)에 이어 두 달 연속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 폭이 커졌다. 이에 따라 1월 무역수지 흑자는 13억4000만 달러(전달 50억6000만 달러)로 주저앉아 무역흑자 행진에도 비상이 걸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무역수지가 마이너스가 안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반도체·고용·부동산 3대 악재
 
수출 부진은 반도체 가격 급락과 국제유가 하락 때문이다. 특히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하는 반도체(금액 기준) 수출은 지난해 12월 -7.8% 역성장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전년동기 대비 -23.3%나 줄어 낙폭이 급속히 커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지난 2년간 초수퍼 호황이 이상과열이었을 뿐 오히려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담담한 표정이다. 하지만 반도체 보너스가 증발하면서 그동안 반도체 신기루에 가려졌던 한국 경제의 부실한 체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문제다. 한은은 올해 명목 수출 증가율을 -1.4%로 추정했다.
 
일자리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3만4000명 증가에 그쳤다. 11월 16만5000명까지 늘어났다가 정부의 임시·일용직 일자리 사업들이 대거 종료되면서 다시 급감한 것이다. 예산을 쏟아부어 간신히 부풀린 고용 수치의 밑천이 드러난 셈이다. 한은은 “올해도 정부의 일자리·소득지원 정책이 고용에 긍정적 요소라면, 반도체와 자동차 등 제조업의 고용 부진이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했다. 공공 부문의 임시직은 늘겠지만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회색 코뿔소는 부동산이다. 지난해 9·13 대책 발표 후 부동산은 무서운 상승세에서 아찔한 급락세로 곤두박질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주택 거래는 7000건으로 전년동기 대비 49.1% 줄었고, 올 1월은 1857건으로 무려 82%나 감소했다. 대출규제 및 보유세 강화, 공시가격 현실화의 3중 자물쇠로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12주 연속 거래가격 하락과 ‘거래절벽’의 이중고에 짓눌려 부동산 시장은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나라 바깥의 가장 큰 회색 코뿔소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조짐이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 무역마찰이 고조되면서 경기 부양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올해 중국은 6·7·8의 마지노선을 놓고 전쟁을 치르고 있다. 6% 성장, 달러 대비 환율 7위안, 소비증가율 8%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전선에서 하나라도 무너지면 중국 경제는 어려운 국면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시진핑 주석이 신년사에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과학기술, 사회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은 위험에 직면했다”고 21차례나 ‘위험’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시 주석은 “우리는 블랙 스완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 코뿔소를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며 위기의식을 주문했다.
 
 
잉여 세수·재정 확대에도 한계
 
이런 안팎의 회색 코뿔소들에 맞서는 정부의 유일한 방패는 재정이다. 올해 470조원의 예산은 경제학적 용어로 ‘확장적 재정’이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다. 이런 초수퍼 예산은 경제 위기를 맞았을 때, 그것도 기준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을 쓰기 어려울 때 동원하는 최후의 카드다. 그나마 지난해에는 세수가 30조원 더 걷혀 다행이다. 이런 세수 호황에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올리고 부동산 활황에 따른 양도소득세 증가, 담뱃세 인상 등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와 부동산의 딱 두 분야만 2017년 수준으로 후퇴해도 11조원 정도의 세수가 줄어들게 된다. 언제 블랙 스완이 나타나 재정 투입이 한계에 부딪힐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 연말부터 번지기 시작한 경제 불안 조짐을 눈치챈 느낌이다. 올 들어 예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까지 감행하며 24조원 규모의 토건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향해 “삽질 그만하라”라던 문 대통령이 “지방 균형 사업”이라며 안면을 몰수하고 있다. 그만큼 초조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연비가 낮은 재정 확대만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메우고 경기 침체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적자 국채 발행이나 추경 편성은 엄두를 내기 어렵게 됐다. 특히 적자 국채는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로 정치적 주홍 글씨가 새겨져 버렸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경제 변동성이 높아졌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1월 2일의 애플 쇼크다. 애플이 차이나 리스크로 인해 매출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자 단 하루 사이에 주가가 10% 가까이 빠졌다. 시가 총액이 단박에 80조원이나 빠져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사내유보금이 265조나 되는 애플이 1분기 매출 전망치를 100조에서 95조로 단 5조원 낮추었는데 말이다.
 
정부와 민주당도 자세를 낮추고 시장의 흐름에 예민해져야 한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경제 통계를 입맛대로 해석하다간 시장의 복수를 부르기 마련이다. 애플 쇼크처럼 어느 때보다 시장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선제적으로 회색 코뿔소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언제 블랙 스완이 급습할지 모른다. 정치로 가린다고 회색 코뿔소나 블랙 스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