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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조용히 해달랬더니 "왕 짜증난다"는 젊은 여성

중앙일보 2019.02.06 07:01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4)
호주 멜버른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35번 트램. 아들이 사는 멜버른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2위에 자주 오른다.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진다는 것은 음지에서 보면 조금은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종택 기자

호주 멜버른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35번 트램. 아들이 사는 멜버른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2위에 자주 오른다.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진다는 것은 음지에서 보면 조금은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종택 기자

 
아들이 사는 멜버른이라는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 2위에 자주 오른다.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진다는 것은 음지에서 보면 조금은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적인 정이 많은 우리 한국인이 느끼기엔 불편하고 심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지쪽에서 보는 풍경도 있었는데 빅토리아마켓을 들어가니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걸어 다닐 수도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스치는 사람들의 입에는 “쏘리(sorry)”가 붙어 다녔다. 찌든 냄새를 풍기며 스쳐 가는 노숙자의 입에서도 “쏘리”가 붙어 다녔다. 잠깐만 스쳐도 “쏘리 쏘리” 하며 미소를 짓는 얼굴에 싸움이 날 리 없고 또 인상을 쓰지도 못하고 따라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덥지만 시원한 기분으로 여행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서울행 버스를 타서 일어난 일이다. 아침 첫차를 탔는데 만석이었다. 시대를 따라 사느라 앱을 깔고 예약해서 다행이었지 새벽에 나왔다고 첫 버스를 탈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세상이다. “어르신요. 일찍 나왔다고 탈 수 없어요. 자식한테 앱을 깔아달라고 해서 예약하셔요.” “잔치시간에 도착하려고 새벽에 나왔는데 어쩌누…. 그 앱이란 건 어디서 팔아요?” 추운 날씨에 내 표를 바꿔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저려도 내 욕심이 이겨서 그냥 탔다.
 
며칠 전 서울행 버스에서 내 뒷좌석의 앳된 아가씨의 통화가 엄청 길었다. 영어 대화가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오래 들으니 소음이 되어 귀를 아프게 했다. [사진 pixabay]

며칠 전 서울행 버스에서 내 뒷좌석의 앳된 아가씨의 통화가 엄청 길었다. 영어 대화가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오래 들으니 소음이 되어 귀를 아프게 했다. [사진 pixabay]

 
요즘은 사람보다 더 가깝고 살가운 친구가 스마트폰이다. 모든 것은 그 녀석을 통해서 전달된다. 모두 자기만의 친구와 대화도 하고 뉴스도 보며 조용한데 내 뒷좌석의 앳된 아가씨가 외국에서 살다 온 건지 영어로 대화하는 통화가 엄청 길다. 처음엔 흥미롭게 쌀라~ 쌀라~ 하는 말이 오래 들으니 소음으로 귀를 아프게 한다.
 
옆 좌석의 어른 부부가 헛기침을 보내고, 내 옆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귀를 막다가 신음을 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헉. 그 모습에 요즘 젊은이들은 참을성이 없는데 버스에서 싸움이 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엄마인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며 손짓으로 ‘다운 다운’ 했다. “아가씨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실래요?”라고.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지를 않고 통화를 계속했다. 아마 우리말을 못 알아 듣나보다 생각하는데 마지막 한국말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야~ XX. 그런데 내 앞에 나이든 여자가 내 목소리 듣기 싫대. 왕짜증 나.”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에서 본 풍경이 생각난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는 예상 문제집을 거금을 주고 입수해 아이들에게 집중해서 풀라고 건네준다. 그 비싼 것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며 선의의 경쟁으로 열심히 공부한다.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아버지 차교수는 예상 문제집을 거금을 주고 입수해 아이들에게 건네주지만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며 선의의 경쟁을 한다. [사진 JTBC]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아버지 차교수는 예상 문제집을 거금을 주고 입수해 아이들에게 건네주지만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며 선의의 경쟁을 한다. [사진 JTBC]

 
우리는 자식들에게 선의의 경쟁을 가르치면서도 너만 일등, 너만 잘나면 된다고 한다. 선하고 해맑은 아이들은 기본의 가르침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지만 정작 부모는 그런 자식을 보면서 바보 얼간이 멍청이로 취급하며 훈육하고 키운다. 여린 자식들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헷갈리며 사회 속에서 부모의 모습을 따라가며 자란다.
 
내 자식들을 사람과 더불어 살지 못하게 독불장군으로 키워온 데 대한 벌을 받는 시간이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며 가슴을 쳐서 반성한다고 바뀔 수 있는 모습이라면 하루에 열두 번이라도 쳐보고 싶을 만큼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반성하게 된다. 독불장군만 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흉흉한 세상이다.
 
오늘도 장거리 버스를 이용한다. 출발 전 손님의 안전을 책임질 운전기사의 한마디가 날씨만큼이나 산뜻하다.
“좌석 번호 자기 표에 쓰인 대로 앉으세요. 남의 자리에 앉지 마세요. 안전벨트 꼭 매십시오. 저기 통화하시는 어르신 목소리 줄이세요. 아~ 껌 딱딱 씹는 분 소리 내지 말고 씹으세요. 출발합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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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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