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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한 마릴린 먼로 "눈이 내렸지만 따뜻했다" 말했던 이유

중앙일보 2019.02.05 06:00
Focus 인사이드 - 남도현 
 
미국 서부에서 비행기를 타고도 20시간이 걸렸을 만큼 아직은 교통이 나빠 그렇게 많이 찾지 않던 1954년 2월, 일본에 신혼여행을 온 스타 커플이 있었다. 은밀하게 허니문을 보내고 싶었던 이들에게 남들이 쫓아오기 어려울 만큼 멀리 떨어진 일본은 좋은 여행지였다. 신랑 조 디마지오는 수차례 MVP에 오른 메이저리그의 대스타로, 지금까지도 불멸로 남아 있는 56게임 연속 안타를 1941년에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신혼여행 중 한국 미군부대 방문
휴전 불과 6개월 뒤 사실상 전시상황
미군, 마릴린 먼로 전용 헬리콥터 내줘

 
마린린 먼로 출연했던 '7년만의 외출' 한장면 [중앙포토]

마린린 먼로 출연했던 '7년만의 외출' 한장면 [중앙포토]

 
노마 모텐슨(Norma J. Mortenson)이라는 이름의 신부 또한 유명 연예인이었다. 그녀는 결혼 직전인 1953년에 제작된 영화 <나이아가라>에 출연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군인들에게 최고의 헬멧 걸(방탄모 안에 오려 붙인 애인이나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되었다. 둘 다 한 번씩 이혼 경력이 있었지만,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들이어서 그들의 결혼은 만인의 가십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미국영화배우

미국영화배우

 
그런데 이들이 일본에 왔다는 소식을 접한 주한미군 관계자가 이왕 어렵게 태평양을 건너온 김에 한국을 방문해 병사에게공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무리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도 신혼여행 중에 이런 요청은 대단히 무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고 일본에서의 일정을 조정한 후 2월 16일 한국으로 날아왔다. 그것도 남편을 홀로 남겨둔 채로였다.
 
자존심이 강한 디마지오는 부인이 홀로 행동하는 것보다 자신도 스타인데 부인만 와달라고 부탁한 미군의 요청에 상당히 섭섭함을 느꼈다고 한다. 여담으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디마지오가 ‘지금 우리는 신혼여행 중’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미군 담당자가 ‘당신이 아니라 부인에게 드리는 요청입니다’라고 답변해 디마지오를 당황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틈이 벌어져 결국 1년도 살지 못하고 그해 10월 이들 부부는 이혼했다.
 
신혼여행 중에 한국에 와서 그것도 병사들의 복장만으로 짐작 알 수 있을 만큼 추운 날씨에 가벼운 차림으로 공연을 펼친 노마 모텐슨. 그녀가 바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마릴린 먼로다. [wikipedia.org]

신혼여행 중에 한국에 와서 그것도 병사들의 복장만으로 짐작 알 수 있을 만큼 추운 날씨에 가벼운 차림으로 공연을 펼친 노마 모텐슨. 그녀가 바로 만인의 연인이었던 마릴린 먼로다. [wikipedia.org]

 
당시 우리나라는 휴전한 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상당히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전선에서는 수시로 총격이 오갔고 지리산과 같은 후방에서도 공비들이 준동했던 준전시 상태였다. 3년간의 전쟁으로 사회기반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어 머물 곳조차 변변치 않았다. 이러한 곳을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찾아왔다.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던 미군은 장군ㆍ병사할 것 없이 여의도 공항에서부터 엄청난 환영을 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그녀는 나흘 동안 전국에 산재한 기지를 찾아다니며 10회에 걸쳐 공연했다. 여전히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의 야외였음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성심성의껏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급조 가설된 무대는 엉성했고 변변한 탈의실이 없어 천으로 가리고 옷을 갈아입었지만, 그녀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다. 공연만이 아니라 배식, 부상병 위문 같은 봉사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숙소인 도쿄 데이코쿠 호텔 지배인의 환영을 받는 조 디마지오와 노마 모텐슨 부부. [wikipedia.org]

숙소인 도쿄 데이코쿠 호텔 지배인의 환영을 받는 조 디마지오와 노마 모텐슨 부부. [wikipedia.org]

 
그녀가 원해서 찾아가려는 곳이 많다 보니 주한미군이 전용 헬리콥터를 제공했을 정도였다. 훗날 ‘공연 중에 눈이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따뜻하게 느꼈다’고 회상했을 만큼 그녀에게 한국에서의 4일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런 추억은 워낙 곤궁하고 자연도 파괴된 곳이 많았으므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기보다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 중인 미군들이 보여준 엄청난 환대에 놀랐다는 의미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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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에 유명한 배우라고 했으나 정작 노마 모텐슨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생소할 것이다. 예명이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먼로는 특유의 백치미와 관능미로 한 시절을 주름잡았다. 문제는 그렇게 가공된 표면적인 모습만 알지 그녀가 진심으로 봉사할 줄 아는 유명인의 자세,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그녀는 진정한 만인의 연인이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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