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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같지 않아" 친구에 실망해 탄식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19.02.04 15:01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22)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빵도 먹고 국수도 먹고 때로는 굶어도 보는 편이 밥의 맛과 고마움을 아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사진 pixabay]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빵도 먹고 국수도 먹고 때로는 굶어도 보는 편이 밥의 맛과 고마움을 아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사진 pixabay]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되풀이되는 일상에 지쳤을 때 가끔 하는 말이다. 맞다. 빵도 먹고, 국수도 먹고 때로는 굶어도 보는 편이 밥의 맛과 고마움을 아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매번 교과서나 업무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을 수도 없고 읽어서도 안 된다. 실은 독서 자체가 그렇게 아낌을 받는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서 양서니 명저 혹은 벽돌처럼 두꺼운, 그러니까 진지한 책만 읽는 것도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 이럴 때 펼쳐 드는 책이 수필집이다. 흔히 에세이라고 하는 건데 이쪽은 워낙 다양한 세계를 담고 있어서 잘 고르면 취향이나 목적에 맞는 책을 골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나를 조금 바꾼다,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마음산책.

나를 조금 바꾼다,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마음산책.

 
설을 앞두고 눈에 들어온 책이 『나를 조금 바꾼다』(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마음산책)이다. 우선 제목이 맘에 들었다. 해가 바뀌면 으레 하던 외국어 공부나 금연이니 조깅 같은 자기관리를 올해는 이런저런 이유로 꿈도 꾸지 않았다. 때를 놓친 것도 있고, 그렇게 아등바등 살 것 있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였다. 그래도 ‘뭔가 변화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은이는 서울 연희동에서 요리 교실을 운영하는 일본 출신의 귀화 한국인. 한국에서 산 지 25년째라는데 벌써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셰프가 쓴 것인 만큼 사이사이 요리법이며 살림살이 팁이 들어 있어, 이른바 ‘정통’ 에세이집과는 꾸밈새가 조금 다르다. 그러니 남성 독자라면 언뜻 ‘에이 나랑은…’할 수도 있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차분하고 그윽한 시선이나 속 깊은 생각이 우러나와 커피나 청량음료가 아니라 향긋한 차를 음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책에서 만난 구절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바람이 지나갈 자리’ 정도의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난 지은이가 누군가에게 듣고는 무릎을 쳤다는데 나 역시 마음에 와 닿았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는 “내 맘 같지 않아” “그럴 줄 몰랐어” 등등의 탄식에서 보듯 상대방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말이다.
 
“주변을 보면 불행은 쉽게 느끼는 데 비해 행복은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지은이의 행복관도 귀 기울일 만하다. “60대 정도를 기준으로 잡고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오면서 멋지게 늙어간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란다.
 
제목과 관련된 ‘조금 바꾸기’는 이렇다. “매일 조금씩 눈에 띄는 곳을 털고 닦기 때문에 먼지가 쌓일 틈이 없으면” 일부러 날을 잡아 대청소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면서 “아주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조금씩 바꾸려고 하는 것, 거기에서 재미를 찾으라”고 권한다.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기 때문에 삶이 복잡하고 고달파지는 것이다. 최대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마이너스 사고’를 바탕으로 생활하다 보면 효율성과 능률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라고도 권하면서.
 
전희원의 『싹수없는 며느리 vs 파란 눈의 시아버지』와 타가미 요코의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

전희원의 『싹수없는 며느리 vs 파란 눈의 시아버지』와 타가미 요코의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

 
사실 깊은 깨달음이 담긴 책은 아니다. 멋진 표현도 없다. 한데 담담하고 선한 ‘생활의 철학’에 끌린다. 그런 면에서 외국 출신 며느리가 쓴 발랄한 책들과 대조적이다. 이스라엘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유대계 캐나다 총각과 사랑에 빠져,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캐나다 퀘벡에서 시집살이하는 씩씩한 한국 여성이 쓴 『싹수없는 며느리 vs 파란 눈의 시아버지』(전희원 지음, 모티브북)를 보면서는 배꼽을 잡았더랬다.
 
며느리에게 김치 담그는 법까지 가르치려 드는 요리광 시아버지와 벌이는 ‘부엌 쟁탈기’는 웃음 폭탄과 함께, 문화충돌과 시집살이에 관한 생각 거리를 던진다.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타가미 요코 지음, 작은씨앗)도 품절되긴 했지만 놓치기 아까운, 명랑한 책이다. “아이고~”하는 상주를 위로하는데 옆방에서 “쓰리 고!”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장례식장 이야기 등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문화 이야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고 보면 엄숙하고 진지한 독서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게 재미나 의미를 준다면, 책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서라도 그렇다면 책은 소임을 다한 것 아닐까.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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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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