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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한 달 살기? 변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즐겨야

중앙일보 2019.02.04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5)
지난 17일 중앙일보 [더,오래]의 오프라인 행사 ‘톡톡 더,오래’에서 50·60세대에게 맞는 해외 한 달 살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시간 관계상 많은 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었지만 관심 있게 들어주셨다.
 
‘한 달’은 관광이나 여행보다는 생활의 단위에 가깝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새로운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다. [사진 박헌정]

‘한 달’은 관광이나 여행보다는 생활의 단위에 가깝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새로운 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다. [사진 박헌정]

 
요즘 워라밸의 흐름 속에 젊은 세대들은 '집 떠나 한 달 살기' 붐이다. 한창 일도 많고, 열심히 돈 모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선배 세대로선 이해하기 힘들지만 세대 간 생활양식과 가치관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내심 부럽고 한번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전성기인 젊은 세대를 그대로 따라 하기에는 체력도, 정보력도 버겁다. 그런 면에서 많은 분이 호기심을 갖고 격려와 자극을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세대에게 맞는 한 달 살기는 어떤 걸까?
 
누가 묻는다. “그렇게 다니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요? 위험하지는 않나요? 가고 싶어도 영어를 못하니…” 맞다. 이 세 가지가 큰 부담이다. 우선 경제적인 부분은 생각의 전환이 중요하다. 패키지여행과 비교하면 훨씬 적게 들지만 어쨌든 평소 고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나의 경우 일 년에 한 번씩 다니려니 작은 집으로 옮겨 주거비를 낮추었다. 평소 생활비에 항공료만 더 드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짧은 여행에서는 ‘이 사람들은 다르네?’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넉넉한 시간은 다른 문화권의 삶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박헌정]

짧은 여행에서는 ‘이 사람들은 다르네?’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넉넉한 시간은 다른 문화권의 삶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박헌정]

 
해외라 위험하다? 위험은 위험을 즐기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밤늦게 뒷골목 술집 찾아다니면 당연히 위험하다. 수수하게 입고 주머니에 스마트폰과 50달러 정도만 넣고 다니면 나를 노리는 사람은 없다.
 
언어소통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다. 전 세계의 생활양식이 표준화되어 불편할 게 거의 없으니 유창한 영어보다 오히려 영어단어 한두 개를 크게 말하거나, 바디랭귀지라도 적극적인 게 중요하다. 구글 번역기도 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환경이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좀 즐거운 긴장을 해보면 어떨까?
 
나의 소박한 꿈은 동네 카페에서 아침 햇살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담배 연기 가득한 사라예보의 카페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1천원짜리 커피를 마셨다. [사진 박헌정]

나의 소박한 꿈은 동네 카페에서 아침 햇살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담배 연기 가득한 사라예보의 카페에서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1천원짜리 커피를 마셨다. [사진 박헌정]

 
놀이동산에 가면 ‘바이킹’이 있다. 바이킹을 타면서 공포 속에 울부짖는 사람과 신나서 소리 지르는 사람, 그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스트레스받기 위해 바이킹을 타는 게 아니라 그 긴장을 즐긴다. 
 
나는 최근에야 바이킹의 재미를 알았다. 그동안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버텼는데 그래 봐야 공포심만 극에 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늘을 날아가겠다. 다이빙하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이니 오히려 안전장치가 나를 붙잡고, 바이킹 속도가 내 욕심보다 늦어서 싱거울 정도였다. 내 의지에 달려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해외, 낯선 곳에 대한 새로운 경험도 그렇다. 나를 먼저 던지느냐, 몇 겹의 두려움으로 대하느냐의 차이다. 어차피 외국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변수가 많다. 그 변수를 인정하고 실수를 즐길 수는 없을까? 전문 가이드들도 실수를 많이 한다. 실수해도 여유를 갖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양상이다. 평화와 행복을 향해 조금씩 조용히 다가가는 것이다. [사진 박헌정]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한 양상이다. 평화와 행복을 향해 조금씩 조용히 다가가는 것이다. [사진 박헌정]

 
그렇다면 우리 세대의 한 달 살기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우선 외적으로는 나이에서 오는 핸디캡을 인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우리는 젊은 세대보다 행동도 늦고 몸도 약하다. 그러니 좋은 음식을 덜 먹더라도 숙소는 편해야 하고, 노안 같은 신체적 약점을 보완해줄 도구나 음식도 더 준비해야 한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어차피 일상이고 여유 있는 일정이니 강행군하지 말고 힘들면 하루든 일주일이든 푹 쉬는 게 좋다.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긴 여행을 처음 하면 불안감, 고립감,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한국 TV 프로그램도 없고 우리말 실컷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다.
 
내면적으로는 ‘아름다운 여행’을 만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들은 신바람 난다. 그들은 여행에서 희망을 찾는다. 가령, “지금은 Polo를 몰지만 다음에는 돈 많이 벌어 페라리를 빌리자!” 그러나 50대, 60대는 인생의 하강 국면을 볼 줄 안다. 여행을 통해 발전보다는 삶의 풍요를 느껴보고 아름다움을 찾는 게 어떨까.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처럼 우리도 아름다운 세상을, 바깥보다 안쪽을 보는 여행을 해야 한다. 비슷비슷한 유적지보다 반려자의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될지도 모른다.
 
50~60대에는 스스로의 물리적인 핸디캡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한 달 살기를 설계해야 한다. [사진 박헌정]

50~60대에는 스스로의 물리적인 핸디캡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한 달 살기를 설계해야 한다. [사진 박헌정]

 
한 달 살아보니 어땠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이나 분위기를 새롭게 했더니 창문을 열어 실내를 환기하는 것처럼 내 인생을 크게 환기한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 이쪽과 차단되니 머릿속에 차 있던 걱정도 사라지고 상쾌한 기분을 느껴봤다. 평소의 고민이 진짜 고민할 가치가 있었을까? 모르고 지나쳐도 상관없는 것들 때문에 끙끙 앓고 살았던 것이다. 한 달 동안의 합법적이고 건강한 도피생활이었다고 할까?
 
남들이 아주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내 인생을 살면서 한편으로는 세르비아 사람의 인생을 짐작해보는 것이다. 신기함을 느끼던 나이로 되돌아갈 수 있었고, 부부간의 애정과 의리도 느껴볼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에 접하면 본능적으로 두렵고 움츠러든다. 나 역시 퇴직 후 회사 명함이 없으니 옷을 홀딱 벗은 기분이었다. 얼마간 의기소침하다가 시작한 것이 해외 한 달 살기였다. 거기에서 재미있는 글감도 나오고 다른 세상에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상승했다. 우리 50·60세대도 인생 환승 시점에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를 권한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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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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