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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서 높다는 엥겔지수의 역습···도대체 한국이 왜?

중앙일보 2019.02.04 10:00
먹방 때문? 배달문화?…한국 개도국도 아닌데 '엥겔지수' 높아진 이유
 

①배달·외식문화②반조리 식품③식품값 상승

가계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엥겔 지수'라 한다. 독일 경제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내놓은 지수다. 그는 저소득 가계일수록 생계비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걸 발견했다. 소득이 적어 다른 건 다 줄여도 먹는 것을 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유층은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 실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 지수가 낮고, 낮은 나라는 이 지수가 높다.
 
그런데 최근 엥겔 지수의 '역습'이 시작됐다. 개발도상국이 아닌 국가에서도 엥겔 지수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을 보면 전형적인 엥겔 지수 패턴을 벗어나는 모습이다. 
 
4일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 발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외식비 포함 엥겔 지수는 2009년 26.6%에서 2017년 27.4%로 늘었다. 외식비 제외 기준으로 보면 13.8%에서 14.1%로 증가했다. 이 지수는 2000년대 꾸준히 낮아지다가 2007년에는 11.8%까지 떨어졌다. 그러다가 2008년 상승세로 전환해 최근 14%대 문턱을 넘었다. 
 
일본 역시 엥겔 지수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외식비 합산 기준, 23.4%(2009년)→25.5%(2017년)→26%(2018년 3분기)로 올랐다. 외식비 제외 기준으로도 18.8%(2009년)→20.7%(2017년)→21%(2018년 3분기)로 올랐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한국의 엥겔 지수를 올린 '주범'(?)은 무엇일까? 배달·외식문화의 활성화가 첫 번째 용의자로 꼽힌다. 한국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외식을 할 때는 식당 서빙 비용 등 인건비가 포함되고 배달음식 역시도 인건비가 반영되기 때문에 엥겔지수도 높아지는 효과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둘째, 반조리·조리 식품의 확산도 한몫했다. 식재료를 사서 조리하는 번거로움을 덜려는 1인 가구, 맞벌이 부부가 늘며 식생활 패턴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집밥' 또는 '혼밥'을 하더라도 모든 재료를 준비해 요리하기보다 미리 조리된 음식을 구매해 먹는 이가 늘어난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역시 가공과정에서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므로 음식료 비용은 증가한다.    
 
셋째, 주요 식재료 가격 상승도 엥겔지수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쇠고기(600g 정육)는 2000년 1만900원에서 2018년에는 4만5000원으로 313% 올랐다. 돼지고기(600g 정육)도 2000년 3750원에서 2018년에는 1만2000원으로 220% 올랐다. 계란(황란 10개)은 2000년 1670원에서 2018년에는 3300원으로 98% 올랐다.    
 
이렇게 식료품 물가 상승이 가파르다 보니 문화생활 등 다른 소비지출은 늘리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2017년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세계 생활비 보고서에서 서울의 물가 순위는 세계 133개 도시 중 6위였다.  
 
먹거리 물가는 당분간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외식 물가는 지난해 4월부터 3%대를 유지해 오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에서도 외식 물가는 3.1%를 기록해 전체 물가를 웃돌았다. 김밥(6.5%), 죽(6.4%), 치킨(5.9%), 떡볶이(5.7%), 구내식당식사비(3.2%) 등 가격이 고공 행진했다. 
 
허윤 교수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이루려면 농산물 등 주요 식료품 가격을 안정시켜서 실질소득증가를 가져오는 효과를 거둬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절대 소득은 못 올려도 비용인 '밥값'을 줄임으로써 소득 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식품 안전성을 중시해 비싸더라도 유기농 식자재를 사는 트렌드도 한몫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고급 식품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는 등 식품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엥겔 지수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령인구는 다른 비용은 줄여도 가계에 여유가 조금만 있으면 건강식·자연산 고급 식재료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먹방' 등이 인기를 끌며 먹거리 소비를 중시하는 문화도 엥겔 지수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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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도 한국과 비슷하다. 요미우리 신문은 지속적인 엔저 현상으로 인해 채소 등 식품값이 오른 데다가 이미 조리된 식품 구매가 늘면서 엥겔 지수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허윤 교수는 "일본의 경우 200만명에도 못 미치는 자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적인 농업정책을 펼친 결과 일반 도시근로자의 식료품비가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 실질소득의 감소 및 농민으로의 소득이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꾸고자 일본 정부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해 농수산 시장을 개방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렇다고 해서 엥겔의 추론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미국 노동통계국과 유로 스탯 등 각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루마니아·중국 등을 보면 엥겔 지수가 30%대를 넘는다. 반면 선진국인 영국·독일 등은 10%대다. 상대적으로 동유럽국가의 엥겔 지수가 높고 서유럽 엥겔 지수는 낮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향을 제대로 읽으려면 엥겔지수를 '국가 전체' 소득이 아닌 소득 수준별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제는 국가 소득이 낮으면 엥겔지수가 높다는 논리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국민소득을 가진 선진국은 엥겔지수가 저소득 국가와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물가가 높아진 탓에 엥겔 지수가 오른 것인지, 소득이 높은 데도 먹거리에 돈을 많이 써서 엥겔 지수가 오른 것인지를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엥겔지수도 소득 수준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강신욱 통계청장도 "소득계층별 물가지수 공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서유진·이병준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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