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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불편하다? BTS 지민, 무대의상으로 입었죠"

중앙일보 2019.02.02 06:00
 2018 멜론 뮤직 어워드를 열흘 앞둔 어느 날 고객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한복 협찬을 해줄 수 있느냐고 신원 미상의 한 사람이 물었다. 전화 거신 분이 누군지 물었지만 한참 동안 답이 없던 그는 조심스럽게 방탄소년단(BTS) 스타일리스트라고 말했다. 거짓말인 줄 알았다. 심지어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격하게 기쁜 감정을 꾹 누른 뒤, 검토해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냉큼 좋다고 말하면 너무 없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생활 한복 브랜드 '리슬'의 황이슬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후 자신의 대표 한복과 함께 전주역 마당에 누웠다. 김경록 기자

생활 한복 브랜드 '리슬'의 황이슬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후 자신의 대표 한복과 함께 전주역 마당에 누웠다. 김경록 기자

 이후 한복 10벌을 추천해줬다. 그런데 과연 BTS가 내가 만든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를까. 행여나 안 입을지도 모르니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송을 지켜봤다. 이럴 수가, BTS 멤버 지민이 내 한복을 입고 나오다니. 예전에 BTS의 노래 'IDOL(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내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 이러한 작은 소망이 현실이 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생활한복 '리슬'의 대표이자 한복 디자이너인 황이슬 씨다.
방탄 소년단 멤버 지민이 2018 멜론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리슬'의 한복 바지를 입고 공연하고 있다. 전통한복 바지의 사폭을 여며 입는 방식과 얇게 떨어지는 서양식 슬랙스를 융합해 만든 ‘사폭 슬랙스’라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한복이지만 지퍼와 단추로 고정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입기가 편하고 힘 있는 춤동작도 가능해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한복이다. [사진 트위터@mighty_jimin]

방탄 소년단 멤버 지민이 2018 멜론 뮤직 어워드 무대에서 '리슬'의 한복 바지를 입고 공연하고 있다. 전통한복 바지의 사폭을 여며 입는 방식과 얇게 떨어지는 서양식 슬랙스를 융합해 만든 ‘사폭 슬랙스’라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한복이지만 지퍼와 단추로 고정할 수 있도록 고안돼 입기가 편하고 힘 있는 춤동작도 가능해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된 한복이다. [사진 트위터@mighty_jimin]

 현재 전통한복 브랜드 '손짱'과 생활한복 브랜드 '리슬'을 운영하는 황 대표는 13년 차 한복 디자이너다. 한복 치마를 만드는 기술자였던 어머니 손에 자란 황 대표는 "저희 4자매는 명절 때마다 한복을 입었어요. 중3 때까지는 매년 입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남들보다 한복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황 대표의 한복 사랑은 대학교에 진학해 꽃을 피웠다. 만화동아리에 가입한 황 대표는 동아리 코스프레에서 만화 '궁'에 나오는 생활한복을 만들어 입었다. 이때 주변에서 황 대표를 보고 '예쁘다', '옷 어디서 샀니'라고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꾸미는 것에 둔했던 황 대표는 '옷이라는 게 사람을 예쁘게 보일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 
지난해 12월에는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태민이 출국하며 리슬의 '소창의 맥시코트'를 입고 나와 한복이 공항패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 리슬 페이스북]

지난해 12월에는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태민이 출국하며 리슬의 '소창의 맥시코트'를 입고 나와 한복이 공항패션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 리슬 페이스북]

 이후 본격적으로 취미로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머니 영향으로 집에 옷을 만들 수 있는 도구들이 다 있었다. 코스프레 관련 카페에서 도안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고 카페 회원들에게 물어보며 한복을 디자인했다. 어머니가 내가 만든 한복을 보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고 입은 한복을 중고사이트에 팔기 시작했다. 당시 중고사이트는 새 옷이나 실제 중고품이 아닐 경우에는 제재를 당했다. 이 현상이 서러웠던 황 대표는 사이트를 직접 개설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정말 한복 매일매일 입나요?
1년 365일 중 360일은 한복을 입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한복이 100여 벌인데 평소엔 옷장을 열고 눈에 보이는 한복을 아무거나 입는다.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땐 각각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를 맞춰 입는다. 보통 치마저고리 형태의 편한 한복을 입는다. 강의에 나갈 때는 최대한 특이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화려한 장신구를 한다. 디자인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 위함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는 코트류의 한복을 신경 써서 입는다. 안에는 기성복을 입고 겉옷은 두루마기를 입는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가면 주변의 시선을 받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럽에 갈 때는 블랙, 레드 계열의 시크한 저고리를 입고 짧은 치마를 입는다. 줄무늬, 꽃무늬, 도트 무늬는 입지 않는다. 결혼식 갈 땐 조심해서 입는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보다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황이슬 대표가 처음 만든 한복. 2006년 대학교 시절 만화동아리 코스프레에서 만화 '궁'의 캐릭터 의상을 재현한 한복이다. [사진 황이슬]

황이슬 대표가 처음 만든 한복. 2006년 대학교 시절 만화동아리 코스프레에서 만화 '궁'의 캐릭터 의상을 재현한 한복이다. [사진 황이슬]

마트 갈 때도, 영화관 갈 때도, 강의를 할 때도, 놀러 갈 때도. 언제 어디서든 황 대표는 한복을 입는다. [사진 황이슬]

마트 갈 때도, 영화관 갈 때도, 강의를 할 때도, 놀러 갈 때도. 언제 어디서든 황 대표는 한복을 입는다. [사진 황이슬]

고궁에서 입는 체험한복, 어떻게 보시나요?
우선 긍정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이 '한복이 참 예쁘더라. 너무 보기 좋더라'라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게 고궁에서 입는 대여 체험한복이 성행했던 시점이다. 이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됐고 SNS에 한복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하나의 놀이문화로 발전했다. 체험한복의 순기능을 보여준 것이다. 이 한복이 전통 한복이 아니라서 한복의 의미를 훼손시킨다는 일부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즐거움을 위해 입는 체험한복과 전통적인 행사와 같은 곳에서 예를 갖춰서 입는 전통한복 등 한복은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게 한복을 입고 즐기면 된다. 
전주역 앞에서 힘차게 점프한 황 대표는 "빨간색이 나에게 잘 어울려서 오늘은 빨간 치마를 입고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전주역 앞에서 힘차게 점프한 황 대표는 "빨간색이 나에게 잘 어울려서 오늘은 빨간 치마를 입고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미래의 황이슬, 어떤 모습일까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한복의 우주정복이다. 우리가 서양 옷을 받아서 자연스레 입고 다니는 것처럼 한복도 외국에서 하나의 패션카테고리로 만들고 싶다. 국내외 패션계에서 하나의 통용 받는 스타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두 번째는 교장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외국의 패션스쿨처럼 한복교육전문학교를 세우고 싶다. 현재 한국에 한복학과는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체계적인 한복에 대한 교육을 받기 어렵다. 한복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복 장인이나 디자이너, 경영자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싶다. 
한복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뭘까요?
한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인 것 같다. '한복은 불편하다', '한복은 비싸다'며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한복인들은 대중적이고 입기 편한 한복, 소재·디자인·공정을 개선해 보다 저렴한 가격의 한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의 역사가 담긴 한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한복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한복처럼 예쁜 시선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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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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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