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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도 막아주는 칠피 갑옷, 이젠 명품 핸드백으로 진화 중

중앙일보 2019.02.01 10:01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3)
칠피 가구. [사진 이정은]

칠피 가구. [사진 이정은]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함에는 ‘옻칠’이라는 귀한 전통 도료가 입혀 있다. 1000년이 간다는 이 도료는  역사적으로 귀중한 물건을 길이 보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옻칠 공예 가운데엔 칠피 공예가 있다. 칠은 옻칠을 말하고, 피는 가죽을 말한다. 결국 가죽에 옻칠하는 공예를 뜻한다.
 
한국에서 옻칠은 나전칠기나 제기, 목기 등 주로 나무제품의 방부와 방수처리에 쓰였다. 이 칠피 공예의 역사는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것으론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장식이다. 천마도가 그려진 안장 장식은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그 표면은 옻칠로 마무리됐다.
 
칠피 함. [사진 이정은]

칠피 함. [사진 이정은]

 
화살도 뚫지 못한 조선의 가죽 갑옷
칠피의 전통은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지만 그 이후부터 맥이 끊겼다. 조선 중기 대표적인 칠피 공예는 갑옷이다. 소가죽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오려 여러 차례 옻칠을 한 다음 다른 천에 배접하고 그걸 하나하나 이어 만들었다. 쇠보다 질긴 견고성으로 얼마나 단단한지 화살로는 갑옷을 뚫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방수나 방부는 물론이고, 철갑옷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가벼워 기동력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었다.
 
2011년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성안 마을 유적 내에서 백제 시대에 입던 옻칠 된 가죽 갑옷이 출토됐다. 출토 당시 이 칠피 갑옷은 645년에 제작됐음을 알려주는 ‘정관 19년’ 명문이 새겨져 있다.『삼국사기』는 “이 황금칠 갑옷을 당나라 군사들이 입었고, 당 태종과 당나라 장수인 이세적이 만났는데 갑옷의 광채가 빛났다”고 했다. 칠피 기술을 포함한 백제의 갑옷 제작 기술이 당나라에서도 알아줄 만큼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박성규 장인. [사진 이정은]

박성규 장인. [사진 이정은]

 
이런 칠피 공예를 유물 보존 차원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있다. 박성규(68)장인이다. 그는 조선 시대 이후 명맥이 끊겨 찾아볼 수 없던 칠피 공예를 끈기와 인내로 복원에 성공했다. 박 장인은 1970년 19세에 공예 일을 시작했다. 1980~90년대 나전칠기가 대중화하던 시절엔 몇몇 공방이나 장인을 제외하고 거의 대다수 나전칠기 공방이 고가의 옻칠 대신에 카슈칠을 했다.
 
카슈칠은 천연 옻칠의 도료와 전혀 다른 기법으로 빠르게 건조되고 완성된다. 소비자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떨어지고 제품의 보존상태도 좋지 않다. 옻칠은 오래 가지만, 카슈는 그렇지 않다. 장인도 이전에는 카슈칠을 하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 비로소 옻칠했다. 그 후 장인은 2006년 마침내 명장으로 인정됐고, 상도 받았다.
 
가죽에 옻칠 소재 디자인. [사진 이정은]

가죽에 옻칠 소재 디자인. [사진 이정은]

 
장인이 칠피 공예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는 박물관 유물이었다. 보다 깊이 있는 작품 재현을 위해 나전칠기의 역사 자료를 찾으며 공부를 계속하던 어느 날, 그는 우연한 기회에 박물관에 전시된 가죽 서류함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개가 아닌 가죽을 더욱 많이 다루기 시작했다. 칠피 공예의 맥이 끊긴 것이 안타까워 매일 박물관에 가서 보고 칠피 분야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칠피 유물을 재현하거나 복원해 낸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었죠. 그럼 내가 가죽에 옻칠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가죽 사는 법도 몰랐지만, 친구 형네 구두공장에서 가죽 무두질하는 것을 배워 필통 같은 공예품부터 만들기 시작했죠. 구두에도 옻칠을 해봤죠. 하지만 가죽에 옻칠했다고 무조건 오래가는 것이 아니고, 노하우가 필요해요. 가죽은 수축성이 있는데, 옻칠을 하면 단단해지고 강해지죠. 처음엔 가죽에 옻칠을 하니 헤져서 갈라지더라고요.”

 
이처럼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장인이 스스로 개척해야만 했던 칠피 공예는 시작할 당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가죽에 옻칠하면 가죽이 질겨지고 방부와 방수가 된다는 것만 알았지, 그 방법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결국 그가 해왔던 나전칠기의 기술을 접목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터득해 나갔다. 습기에 약한 가죽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선 옻칠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알았다.
 
원피는 종류가 무척 많다. 또 같은 종류라도 가죽의 두께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그  흔한 소가죽부터 돼지가죽, 양가죽, 철갑상어가죽을 비롯해 거북이 등껍질 가죽까지 그가 재료로 쓰지 않은 가죽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잘 말려놓은 가죽을 전통방식으로 석회질이나 잿물 등을 넣은 천연 혼합물에 담가 지방질을 빼고 말리면 딱딱했던 가죽이 부드러워진다.
 
가죽에 옻칠 소재 디자인. [사진 이정은]

가죽에 옻칠 소재 디자인. [사진 이정은]

 
원피를 적당한 크기로 재단한 후 디자인된 밑그림을 그린 백지를 붙여 모양대로 잘라낸다. 기본적인 형상을 잡아가는 과정인데, 잘라내거나 구멍을 내는 등 가죽을 마름질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 다음 본격적인 칠작업을 시작한다. 초벌로 생옻칠하고, 아직도 부드러운 가죽 위에 옻칠과 찹쌀풀을 섞어 쑨 옻칠 풀을 바른다. 옻칠 풀 작업은 보통 여덟 아홉번 정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가죽은 비로소 나무같이 딱딱해지고 강해진다. 방부와 방수도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한 가죽 위에 본격적인 멋 내기 작업이 이어진다. 가죽을 크기별로 잘라 고목을 이용해 가구· 함 등에 붙이고 사포질을 반복하며 옻칠하는 일이다. 광을 내는 것이 맨 마지막 작업이다. 이런 장인만의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배우기 위해 해외에서도 찾아온다.
 
“연탄이나 나르자고 했죠. 하지만 칠피 유물을 복원하고 재현하는 데 사명감이 있는 남편을 존경하니 그래도 버티면서 끝까지 믿었죠. 아이들한텐 미안해요. 갖고 싶은 장난감도 못 살 정도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칠피 공예 이수자이자 장인의 아내 김용순 씨의 눈물은 그간의 고단한 삶을 말해주는 듯 했다.
 
장인의 딸인 박선영 이수자. [사진 이정은]

장인의 딸인 박선영 이수자. [사진 이정은]

 
아버지의 칠피 공예 돕고 있는 딸
장인의 딸인 박선영 이수자(39)는 대학에서 보존처리학과를 전공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고궁박물관에서도 일했다. 그는 20대부터 15년 가까이 아버지가 칠피 공예 하는 것을 도왔고, 지금은 주로 가죽에 옻칠해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가방을 만드는 기술력을 전수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칠피 가방. [사진 이정은]

칠피 가방. [사진 이정은]

 

“가죽은 물에 약해 눈비를 맞으면 망가져요. 해외 명품 가죽 가방이라고 해도 사실은 수명이 다하면 못 쓰죠. 하지만 가죽에 옻칠하면 방수가 되기도 하고 평생 소장할 수 있어요.”

 
박 장인과 그의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진정한 장인정신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장인정신이라 하면 수공예 영역의 ‘한 땀 한 땀의 정신’이란 해석도 있지만 사실은 직업의식이다. 대다수 장인은 돈만 보고 일하지 않는다. 수작업 기술이 하루하루 발전해 나갈 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희열을 느끼며 진화해가는 예술가다.
 
안타깝게도 일부 장인은 자신을 단순한 기능공이라 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경험과 경력으로 만든 완성도 높은 작품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이정은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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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이정은 채율 대표 필진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 인간문화재 등 최고 기술의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전통공예품을 제조하고 유통한다. 은퇴 후 전통공예를 전수할 문하생을 찾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만 은퇴 이후가 아니면 전통예술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지방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 등 장인을 소개하고, 은퇴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 재취업으로 연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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