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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사귀는 사람 있다고? 낌새 못 챘는데…

중앙일보 2019.02.01 08:00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19화

아버지는 딸에게 작문 기초부터 가르쳤다. 문법으로 시작해 문장론으로 이어졌다.
-글은 주어와 술어가 뼈대다. 여기다 살을 붙여 색깔이 있거나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글은 간결할수록 좋다. 길어지면 비문이 되기 쉽다. 중복은 금물이다. 단어는 물론 비슷한 표현의 중복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복은 강조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수필 같은 신변잡기는 편하게 읽히게 쓰면 된다.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담은 글은 논리가 생명이다. 논리가 약한 글은 외면받는다. 억지가 많아도 마찬가지다. 그런 글은 글이 아니다.
 
거의 매일 저녁 아버지의 강의가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딸은 국어 시간을 좋아했다. 글짓기 대회에도 나가 상도 여러 번 받아왔다. 하지만 가정이 다 깨진 지금 사춘기 딸은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다. 아버지는 딸의 심경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끊임없이 작문 실습을 요구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숙제를 내줬다. 
 
딸은 점점 지쳐갔다. 아버지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거친 말을 예사로 내뱉었다. 벌을 주고 매를 드는 일도 잦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그즈음 이복 언니, 오빠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하굣길에서 찾아낸 동생을 뒷골목으로 끌고 가 윽박지르고 폭언을 일삼았다.
 
"야, 너 같은 게 나와 우리 집이 엉망진창이 됐어. 알아?"
"너희 엄마는 도대체 어떤 여자야? 왜 남의 가정을 깨고 우릴 거리로 내몬 거야?"
다행히 작은 언니는 보람이 편에 서줬다. 언니, 오빠가 보람이를 괴롭히는 걸 알고 말리곤 했다.
 
"보람이도 우리와 같은 피해자일 수 있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왜 어린 걔를 괴롭혀?"
조금은 위안이 되었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글쓰기 수업은 1년쯤 이어지다 멈추었다. 참다못한 딸이 가출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아버지, 이제 저 찾지 마세요!
【아버지 보세요.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집이 저에겐 지옥 같아요. 아무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어요. 그래서 떠납니다. 아버지는 글을 잘 써야 요조숙녀가 되고 시집도 잘 간다고 하지만 저는 이제 그런데 전혀 관심 없어요. 아버지는 또 저에게 작가가 되라고 하지만 제가 배운 건 문장론이 전부예요. 작가가 되려면 창의성을 키워야 하는데 지금 환경에선 있던 창작성마저 싹이 다 마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떠나요. 어디가 될지는 몰라요. 지금부터 생각하려고요. 저에 대한 사랑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일방적인 사랑은 이젠 사양하고 싶어요. 내내 안녕히 계세요.】
 
병석의 아버지는 그 가슴 아픈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봉투는 낡아 너덜너덜했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그걸 버리지 못했을까.
 
편지를 쓰고 누나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전에 엄마를 따라 가본 절이었다고 한다. 주지 스님을 만나 집안에 일이 생겨 며칠 묶을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스님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잠자리를 챙겨주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절간 생활이 반년쯤 이어졌다. 서당개 풍월 읊듯 누나는 자연스레 불경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홀로서기에 일찍 눈을 뜬 덕에 절간 생활에는 빠르게 적응해갔다. 이복 오빠에게 추행을 당한 끔찍한 일도 떠올리며 틈틈이 호신술도 단련했다. 절에서 심신을 수양하던 누나는 비구니가 되려는 꿈도 꿨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절을 찾아온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비는 바람에 7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 뒤 아버지는 더 이상 딸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가고 국어교사가 된 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였다.
 
아버지는 은퇴 후 강원도 홍천에서 작은 집을 짓고 혼자 살았다. 그러다 4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자 딸은 병원에서 온 연락을 받게 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연을 끊고 남처럼 살았지만 쓰러진 아버지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딸이 나선 덕에 요양원에 들어간 것이 벌써 4년 된 것이었다. 몸져누운 아버지는 회한의 나날을 보냈다. 
 
두 아내와 네 자식 중 남은 건 막내딸뿐이었다. 다행히 딸의 감정은 미움에서 점차 연민으로 바뀌어 갔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요양원 직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더 좋은 시설로 옮기는 건 바로 돈 문제로 이어졌다. 누나가 원장을 만나고 직원들에게 선물까지 사주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요양원을 다녀온 뒤 나는 누나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실 그 날 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 중 아주 특별한 건 없었다. 줄거리는 누나에게서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누나와 상의 없이 아버지를 찾아간 것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메일을 썼다. 아버지 얘기는 언급하지 않고 얼굴 잊어먹기 전에 한번 보자고.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넉 달간 다섯 번째 메일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대학 동창, 그녀가 상담을 요청하다
겨울이 가고 어느새 한강 변은 개나리꽃으로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새 직장에서 나는 잘 적응해 갔다. 일은 특별히 어렵지 않았고, 동료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대학 여자 동창장 팀장의 도움도 알게 모르게 힘이 되었다. 그녀도 대인관계가 좋았다. 나에게 잘해 줬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거 같았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잘 대하는 편이야. 그게 좋은 거잖아.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장하니까, 호호호"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친절은 정평이 나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는 어디서나 인기가 좋았다.
"장서희 씨를 다들 만인의 연인이라고 하던데...."
 
그녀는 그런 평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했다. 그런 소리를 듣기 위해 행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그런 평을 듣다 보니 더욱 그런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 약속이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그녀가 왜 결혼을 못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들 자신을 좋아하니 굳이 한 사람에게 목맬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회식자리에서도 늘 주인공이었다. 2차 노래방은 필수였다. 어쩌다 빠지려 하면 사람들이 가만두질 않았다.
 
"연일 그렇게 몸을 혹사해도 괜찮은 거야?"
언제 점심 뒤 커피 한잔하면서 나는 그렇게 물어봤다.
"나 본래 무대체질인가 봐, 호호. 피곤한 줄도 모르겠어."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상담 좀 해 달라고 했다.
 
"막강팀장 장 팀장이 무슨 일이래?"
회사에서 멀지 않은 장충동 삼겹살 집에 자리를 잡았다.
"왜 이리 급해? 집에 몰래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나."
몇 잔이 오간 후 장 팀장, 아니 장서희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나보고 만인의 연인이라고 했지?"
"내가 아니라 사람들이...."
"맞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지. 그런데 이제는 좀 힘드네, 아니 상당히 힘들어."
"그러면 이젠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감?"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사실 작년부터 몸을 좀 사리려고 하는데 말발이 통 먹히지 않는다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내가 뭘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머리를 좀 굴리다 나는 이런 대안을 제시했다.
"위장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고 며칠 병가를 내. 물론 실제 입원도 하고. 그 정도는 해야 사람들이 달라질 거야."
 
그러나 그날 자리를 마련한 그녀의 생각은 그런 쪽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싱글 생활을 즐겼지만 이젠 지쳐가고 있으니 자신을 좀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더 쉬운 말로, 자신과 사귀자는 거였다.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짓다 실토했다.
"나, 사귀는 사람 있어."
"아 그래? 특별한 약속도 없는 것 같던데, 데이트하는 낌새도 눈치 못 챘는데."
"아, 그게 지금은 좀 조용한데. 뭐랄까, 푹 익히고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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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심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