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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초계기 안보 갈등···시작은 "욱일기 게양 금지"

중앙일보 2019.02.01 00:04 종합 21면 지면보기
막가는 일본, 대책 못찾는 한국
오랜 우방이었던 일본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말 동해에서 저공 비행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에 대해 해군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3200t)이 사격통제용 레이더파를 쏘아 시작됐다. 일본은 우리 구축함이 자국 초계기를 위협했다고 주장했고, 우린 부인했다. 진실게임에 들어갔지만, 규명은 쉽지 않았다. 과거엔 별문제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한 단순사건이 이렇게 커진 그 수면 아래에는 더 큰 요인이 잠재해 있다. 현 정부의 마이웨이식 안보정책과 오랜 반일 감정 때문이다. 군사외교 전문가들과 현 상황을 긴급 진단했다.  
  
초계기 사건으로 한·일 군사관계는 파국 직전이다. 주일무관을 지낸 권태환(예비역 준장) 한국국방외교협회장은 “양국 군사관계가 레드라인(red line)에 서 있다”고 했다. 한 발짝만 더 나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정도다. 그동안 독도·위안부·강제노역 등 문제로 시끄러웠어도 군사관계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일본 초계기가 또 위협 비행하면 “강력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해군은 정 장관의 말을 ‘교전 불사’로 이해한다. 매우 위험한 언사다. 이에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29일 “한국과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냉각기는 한·일 충돌을 방치하는 것”이라고 김 회장은 우려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양국 군 관계가 이처럼 악화한 것은 정치·안보적 이유가 겹쳐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소를 위한 화해·치유재단 해체와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판결은 표면적 원인이다. 일본 자위대는 지난해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해군 관함식에서 감정이 상했다. 그때 일본측은 관함식에 참가할 함정에 일장기와 해상자위대 깃발(욱일기)을 달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일장기만 고집했다. 이 바람에 일본 함정은 관함식에 불참했다. 그런데 실제 관함식에선 외국 함정들이 국기와 해군기를 모두 게양했다. 이에 일본은 항의했다. 2017년 일본 방위대학 학생을 태운 함정이 평택 2함대를 방문했을 때도 홀대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하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중국을 의식해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 팽창에 대응해 무역전쟁 중이다. 일본~대만~필리핀에 이르는 해상수송로에서 중국이 미국을 밀어내고 사실상 해상통제권을 행사한다는 전략 때문이다. 중국이 이 수송로를 장악하면 미국은 동아시아를 잃고, 섬나라인 일본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우리도 같은 처지다.
 
그래서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아세안과 연대해 중국에 대응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해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일본은 여기에 적극적이다. 김진형(예비역 해군 소장) 전 1함대사령관은 “일본은 해상수송로를 지키는데 존망을 걸고 있다”며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유”라고 했다. 여기에 한국은 배제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에 이어 2번째 안보협력 대상국이었던 한국을 맨 뒤로 뺐다.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또한 북핵 해결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감축 또는 철수하면 일본이 동북아를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초계기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0일로 되돌아 가보자.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북한 어선이 대화퇴어장에서 조난했다는 통지를 받고 수색에 나섰다. 해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함은 어선을 찾기 위해 해상 사격통제용 레이더(MW-08)를 켰다. 이 레이더는 빔 폭이 커서 초계기에서도 포착된다. 이 함정에 장착된 대공사격통제용 레이더는 STIR-180이다. 해군은 이 레이더는 가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초계기 P-1이 고도 150m의 초저공으로 500m까지 다가왔다. P-1은 보잉 737을 개조한 것으로 덩치가 큰 항공기다. 이런 P-1이 근접 비행하면 충돌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광개토대왕함은 위협을 느꼈다.
 
그런데도 일본은 도리어 P-1이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파에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일본 방위성은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항의했다. 사실을 확인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엔 일본 외무성까지 가세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조사를 거쳐 “대공레이더 조준이 없었다”며 일측의 저고도 위협비행에 사과를 요구했다. 서로의 주장이 엇갈린 셈이다.
 
일본은 이어 지난달 14일 싱가포르 회의에서 검증을 위해 우리측에 레이더파 정보를 모두 내놓라고 했다. 그러나 레이더파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 함정 레이더는 상대방이 전파를 방해할 가능성에 대비해 100개가량의 파장을 수시로 바꿔가며 사용한다. 일본이 이 정보를 역이용하면 광개토대왕함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일본의 요구는 마치 자신과의 통화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의 휴대폰 사용기록을 모두 까라는 것과 같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번 초계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양국의 군사협력채널이 거의 가동되지 않았다”고 김 전 사령관은 지적했다. 한·일은 국방부 차관보 및 국장급, 합참 전략본부, 정보본부, 해군 함대 등 사이에 다양한 군사채널을 갖고 있다. 한국 합참의장과 일본 통합막료장이 언제든 화상회의도 열 수 있다. 더구나 양국 해군은 해마다 동해와 남해에서 해상 수색구조훈련(SAREX)을 해왔다. 의지만 있으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 초계기를 위협했다는 STIR-180 레이더는 정말 켜지 않았을까. 해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함엔 레이더 가동 기록장치가 없다. 그래서 이 함정 승조원을 조사했지만, STIR-180을 켰다는 진술이 없었다.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 컴퓨터에는 우리 군이 가동한 모든 레이더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여기엔 광개토대왕함의 MW-08 가동기록뿐이었다. KNTDS는 합참과 청와대, 작전지휘소와 함정 등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주장은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1월 18~23일 사이 3차례나 더 우리 함정에 저고도 위협비행을 실시한 것이다.
 
이처럼 엇나가는 일본을 자제하게 하고, 한·일 관계를 원상회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현재로선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일본 전문가인 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은 “한·일 갈등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내용을 잘 아는 미국조차 팔짱 끼고 있다”며 “일본은 북핵과 중국에 대비해 군사대국화도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해결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과잉 대응할 명분을 만들어 주지 않아야 한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도움말 주신 분=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진창수 전 세종연구소장, 김진형 전 1함대사령관,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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