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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앉은 간이역, 그 곳서 찾은 지금 우리의 모습

중앙일보 2019.01.31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7)  
목행역. [사진 키후니 네이버 블로그]

목행역. [사진 키후니 네이버 블로그]



목행역과 牧杏驛 사이
 
괄호 쳐진 목적지를 향해 달리다가
드문드문 행복을 찾아 헤맸을 목행역
떠나는 눈은 게을러지기 쉬워도
바람 향해 흔드는 손은
차마 잊지 못해 바지런하다
 
평행선 위를 달려야 하는
바퀴는 둥글어서 더 덜컹거린다
 
제 심장소리만큼은 뜨거워져도
스스로 차단하는 귓바퀴처럼
뒷전에 물러나 내 탓이라 조아리는 간이역
무던한 자기 때의 이야기를
머리에서 가슴까지
머나먼 사이 어디쯤 깊이 달아 놓는다
 
하나의 등불이 꺼져갈 때
하나의 세계도 쿨럭이기에
철로는 옛 연인의 입맞춤을 그린다
 
그래도 문 닫힌 (牧杏驛) 울타리에는
대지가 가꾼 살구나무 흰 꽃등이
비릿한 첫사랑처럼
얼마간의 제 세상을 매달 것이다
 
[해설]
은퇴하고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던 선배 세대와 달리 요즘엔 30여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시간 관리를 잘해야 보람차게 여생을 지낼 수 있다. [사진 pixabay]

은퇴하고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던 선배 세대와 달리 요즘엔 30여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시간 관리를 잘해야 보람차게 여생을 지낼 수 있다. [사진 pixabay]

 
나도 현직보다 은퇴한 친구가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은퇴하고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던 선배 세대와 달리 요즘엔 30여년을 더 살아내야(?) 한다. 그러니 시간 관리를 잘해야 보람차게 여생을 지낼 수 있다. 은퇴 후 초기에는 대개 등산이나 여행, 취미활동에 매달린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친구 A는 취미활동에 시간을 보내기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양병원에서 치매 노인이나 중증환자를 돌본다. 그는 대기업 임원까지 지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환자들을 목욕을 시켜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음식을 먹여주고, 휠체어 산책을 같이한다.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졸업한 후 남자간병인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가 동료 간병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아예 직업으로 삼았다. 그랬더니 책임감이 더 생겨 자기 일에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겠다는 어릴 적 꿈을 떳떳하게 실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농담처럼 나이가 들어도 월급도 받고, 건강도 지키고, 봉사도 하니 일석삼조가 아니냐며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짬짬이 휴가를 내어 부부동반 해외여행도 다녀온다. 정말 본받고 싶은 친구다.
 
친구 B는 젊어서 틈틈이 색소폰도 배우고 사진촬영도 다니더니 은퇴해서는 친구들에게 무료로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가 소문이 나자 조그만 카페를 열어 실비로 대여와 교육을 병행한다. 한가한 주말에는 마음이 울적한 친구들을 용케도 알아내어 함께 국내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마음에 빚을 지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닌다. 벌써 웬만한 친구들은 그와 한 번쯤 출사 여행을 다녀왔다. 말이 출사 여행이지 풍경을 찍기보다 친구의 마음을 인화하는 데 힘쓰는 것 같았다. 나도 그를 따라 출사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내 마음을 찍어 인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해주는 진정한 멘토란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맺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동병상련의 자세로 곁을 내준 사람은 그에게 진정한 멘토이자 소울메이트가 된다. [사진 Freepik]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맺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동병상련의 자세로 곁을 내준 사람은 그에게 진정한 멘토이자 소울메이트가 된다. [사진 Freepik]

 
살다 보면 우리는 여러 번 위기와 실패의 순간을 만난다. 대학 진학이나 취직 시험에 낙방하였다든지,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실패를 체험한다. 또 결혼문제, 진로선택, 사업 곤란, 은퇴, 사별 등 위기의 순간에 빠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살피게 된다. 응원의 손길을 기대한다. 그러고는 아무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낙담하여 움츠러든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새롭게 맺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동병상련의 자세로 곁을 내준 사람은 그에게 진정한 멘토이자 소울메이트가 된다.
 
실패와 위기의 순간에서 잘 이겨내고 성장하는 사람들은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줄 알고 또 ‘심리적 복원력’이 크다고 한다. 심리적 복원력은 ‘심각한 스트레스나 역경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방식으로 일어서서 살아가며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친구 B는 자신이 부도로 사업이 망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갚으려고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금전적인 도움보다 심리적 응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멘토는 단순히 가르치거나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 위에 무등 태워 좀 더 다른 시각을 보도록 눈을 열어주는 사람이라고 그는 늘 말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보리스 시릴 뤼크는 이 ‘복원력’의 배경에는 ‘모순어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숭고한 어두움’, ‘생의 눈부신 불행’, ‘썩는 거름 위에 홀로 핀 장미’ 등 같은 모순된 언어를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복원력이 큰 사람들은 비록 충격받은 마음의 한 부분은 파괴되었지만, 아직 성한 부분을 소중하게 보호하면서 절망의 에너지를 동원해 숨어 있는 행복과 희망의 요소들을 끌어모은다.
 
모순어법을 통해서 삶의 위기와 고통을 비껴갈 수 있는 유머와 여유를 찾게 된다. 시에는 모순어법이 자주 등장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 등이다. 그러기에 시에는 복원력과 위로하는 힘이 있다.
 
목행역은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북선의 간이역이다. 한때는 화물과 승객으로 번창하던 정식 역이었다. 그러다가 근처 큰 공장이 문을 닫고 화물이 줄어들어 간이역이 되었다. 충주시가 커지고 도시계획으로 신작로가 생기자 목행역은 뒷길에 나앉게 되었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목행역’을 한자 음훈으로 읽으면 牧杏驛, ‘살구나무를 키우는 동네의 역’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근처에 살구나무가 많았나 보다. 한자는 한글 이름과 달리 그 속뜻을 금세 알 수 있다. 그 대신 한글 이름은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널리 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빼닮은 목행역  
목행역 표지판. 자신의 꿈을 펼치다가 무상한 세월 탓에 뒤로 물러앉은 간이역인 목행역은 우리 삶을 그대로 닮았다. [사진 키후니 네이버 블로그]

목행역 표지판. 자신의 꿈을 펼치다가 무상한 세월 탓에 뒤로 물러앉은 간이역인 목행역은 우리 삶을 그대로 닮았다. [사진 키후니 네이버 블로그]

 
자신의 꿈을 펼치다가 무상한 세월 탓에 뒤로 물러앉은 간이역인 목행역은 우리 삶을 그대로 닮았다. 목적지를 향해 평행선처럼 팽팽히 맞서면서 달리는 철로는 인간의 타자성을 상징한다. 그 위를 굴러가는 둥근 바퀴는 각자가 지닌 양심이다.
 
양심의 속성은 우리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며,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저지르지 말라 요청한다. 또 질서를 지켜 폐를 끼치지 말라 하며, 진리가 무엇인지 살펴가며 살라 한다. 양심은 내 안에서 언제나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살면서 얼마나 자주 양심을 외면하면서 꺼림 직하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간의 귀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면 오히려 병의 징조이다. 타인의 목소리는 하나로 또렷하게 들리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귀와 뼈의 울림, 투 트랙으로 들린다. 그래서 녹음기에서 재생한 자기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고 타인처럼 늘 낯설다. 제 몸 밖에서는 뼈의 울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 즉, 양심의 소리는 뼈의 울림이다. 각자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우리는 비록 간이역처럼 세월의 뒤안길로 퇴장하지만, 살구나무 꽃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세상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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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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