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찬호의 시선] 임종석 UAE 특보 임명 미스터리 추적

중앙일보 2019.01.31 00:23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8일 물러난 지 열흘여만인 21일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 특보를 맡은 것은 아무리 봐도 미스터리다. 우리 대통령이 특정 국가, 그것도 중동의 소국을 지목해 특보를 둔 건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듯이 임종석은 2017년 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를 극비 방문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 문제로 임종석과 혈투를 벌인 이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당시)였던 김성태(3선·강서을) 의원이다.
 

김성태, 임과의 90분간 독대 첫 공개 … 사우디산 석유 끊길 위기 있었다
임종석 청와대 떠나자 불안해하는 UAE 달래려 초유의 특보 신설 추정

그는 임종석의 UAE 방문이 이명박 정부 시절 체결한 군사협정을 파기하려다 자초한 ‘외교 참사’의 결과라고 맹공한 끝에 지난해 1월 13일 국회 청사 238호실 자신의 집무실에서 임종석과 90분간 독대했다. 둘은 이 자리에서 ‘원전 수주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국익 외교의 연속성’에 합의하며 싸움을 일단락했다. 당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UAE 사태’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김성태에게 물었다. 그동안 ‘임종석과 둘만의 비밀’이라며 침묵을 지켜온 그의 입이 1년 만에 열렸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임종석과 무슨 얘기가 오갔나.
“‘어설픈 적폐 청산 외교 놀음을 당장 중지하고 탈원전 정책은 철회하라’고 했다. 임종석도 화급했는지 ‘대통령에게 (탈원전 철회를) 건의하겠다’며 ‘UAE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말라’고 간청하더라”
 
문재인 대통령의 ‘신앙’인 탈원전 원칙도 물릴 만큼 UAE 문제가 급했다는 건가.
“그렇지. 당시는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등을 돌릴 판이었다. 중동 전체와 외교 참사를 빚을 상황이었던 거다. 임종석에게 ‘당신들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이냐’고 했다.”
 
정말 사우디와도 관계가 틀어질 상황이었나.
“내가 1980년대 노무자로 사우디에서 살아봤지 않나. 사우디나 중동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죽여도 되는 사회다. 전임 대통령(이명박)이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하려 하니 UAE 사람들이 돌아버린 거지. UAE랑 사우디는 형제국가다. UAE가 한국과 관계를 끊으면 사우디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현 정부가 뭘 했기에 UAE가 그렇게 화가 난 건가.
“UAE는 바로 옆의 핵 개발국 이란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UAE에 ‘원전을 수주해주면 숙원인 공수 병력 양성을 비롯해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UAE로선 단비였다. 그래서 목구멍까지 넘겼던 프랑스 원전대신 우리 원전을 수주하며 군사협력 MOU(양해각서)를 맺은 거다.”
 
그 MOU가 왜 문제가 됐나.
“2017년 출범한 현 정부가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은 다 뒤집고 싶은 마음에서 문제의 MOU가 국회 동의 없이 체결된 걸 문제 삼아 원점으로 돌리려는 움직임을 보인 거다. UAE는 격분해 사우디까지 끌어들여 반발했다. UAE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 원전 대금 미수에다 사우디산 원유 공급이 끊길 위험이 발생한 거다. (당시 UAE가 단교까지 거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랬을 거다. 오보였다면 이 정부가 ‘고발하겠다’며 난리 쳤을 텐데 조용하지 않았나. 거기 답이 있다.”
 
그래서 임종석이 UAE로 날아간 건가.
“그렇다. 놀란 청와대가 부담스러운 공식 외교 채널 대신 비선(임종석)을 보내 급한 불을 끈 거다. 그 뒤 UAE 왕세제 측근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행정청장이 한국을 찾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UAE에 가고 해서 겨우 틀어막은 것 아닌가.”  
 
갈등이 일단락됐는데도 임종석을 특보에 앉혔다.
“UAE는 그래도 안심이 안 돼 MOU에 군사 협력 기간을 ‘무기한으로(Indefinitely) 한다’는 문구 추가 등 개선책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 문구로 충분하다’며 거부했을 공산이 크다. 이런 마당에 임종석마저 물러났다. 중동권 사람들은 사람이 바뀌면 의심을 한다. 임종석이 공직을 떠났으니 한국이 또 입장을 뒤집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우리 정부에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을 해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수 있다. 이에 대통령이 임종석에게 특보 자리라도 줘서 그쪽 불안을 잠재우려했을 거다. 내년 총선에 나가야 할 임종석으로서도 특보 자리 하나 걸치면 좋은 일일 테고.”
 
임종석이 독대하면서 실책을 인정하던가.
“인정할 건 인정하더라, 상당히.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만만찮은 것임을  깨달은 거지. 그렇지 않으면 집권 초기 서슬 퍼런 대통령 비서실장이 유례없이 뭐하러 야당 원내대표 방에 찾아와 한 시간 반이나 얘기했겠어.”
 
교훈을 찾자면.
“국익 차원에서 그냥 지나가면 될 사안을 전임 보수 정부에 대한 보복 정치 심리에서 쓸데없이 걸고넘어져 문제를 키운 끝에 화를 자초한 거로 본다. 이번 사건으로 UAE에서 한국 원전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게 제일 큰 비용이다. 내가 알기론 수주 대금을 다 받은 게 아닌 상태다. 두고두고 코 꿰게 생겼다. 또 UAE 사람들이 ‘한국만 믿었다간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점도 뼈아프다.” 
 
강찬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