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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앙꼬 없는 찐빵, 알코올 없는 맥주

중앙일보 2019.01.31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20년 전 함께 일하던 선배를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식사를 약속한 날, 선배가 가방에 따로 챙겨온 것은 알코올 없는 맥주였습니다. 술을 예전만큼 마시지 못하는 선배가 건배의 기분은 내고 싶기에 마련한 일종의 타협책이었습니다. 술 없는 술자리는 그렇게 시작됐고 알코올 없는 맥주는 그 자체로 유쾌한 안주인 셈이었습니다. 식당에 양해를 구하고 각자의 잔에 따른 후 건배하며 지난 세월 회식의 문화를 돌아보았습니다. 몇 가지 술을 섞어서 파도를 타며 상대가 잔을 비우는 것을 확인하고 순번처럼 돌아오는 삼행시 같은 ‘건배사’를 외우느라 긴장하던, 자정을 넘어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되던 술자리는 이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 치르는 의례 같은 모닝커피를 디카페인 커피로 선택했습니다. 익숙해진 입맛은 포기할 수 없지만 하루에도 몇잔을 마시느라 부담스러워진 카페인은 숙면을 위해 조금은 멀리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취함 없이 맛과 청량감을 즐기고 싶은 알코올 없는 맥주는 아기를 가진 분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고마운 물건이라는 이야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옵니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하길 직장인은 출근만 안 하면 좋은 직업이고 교수는 강의만 하지 않으면 좋은 직업이라 합니다. 물론 이처럼 필수불가결한 본질을 포기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빼도 좋은 불필요한 부작용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요즘애들은 참… 우리때는 말이야”라는 이야기의 시작은 핸드폰이 허용되는 군대와 두발 규제가 없어진 학교에 대한 신문기사로부터  비롯됩니다. 한때 꼭 지켜야 할 것만 같았던 기준이, 지나고 보니 반드시 필요한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규율과 인권이 길항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통제와 존중이 이율배반인 것도 아닙니다. 목적과 수단이 둘 다 정당하기 힘들어 이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설탕이 안 든 음료수와 고기가 없는 햄버거처럼 좋은 것 둘을 다 가질 수 있는 친절하고 현명한 사회가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학교에 선생님이 없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학생이 없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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