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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김현철 문책, 끝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9.01.31 00:1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J노믹스란 작명은 김현철 전 경제보좌관이 했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대선 전 “김현철이 어느 날 J노믹스로 하자고 제안했다. 문재인 당시 후보가 단번에 오케이했다”고 했다. 이때 김현철 보좌관은 J 커브를 예로 들었다고 한다. J 커브는 환율효과를 말한다. 환율을 올리면 처음에는 무역적자가 더 커졌다가 이후 큰 흑자로 돌아선다. 그 모양이 알파벳 J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소득주도성장과 묘하게 통하는 맛이 있다. 처음엔 잠시 경제를 주저앉게 하지만, 참고 견디면 크게 성장시킬 것이란 염원과 희망이 딱 그렇다. 대통령이 J 커브의 “참고 기다리라”는 주문을 믿고 소득주도성장을 재신임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경제 철학의 전환’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다

김현철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과 어떤 정치적 접점도 없다. 그 스스로 밝혔듯이 문 대통령이 그의 책 『저성장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읽고 “만나자고 했다”는 게 인연의 시작이다. 그의 경제사적 지식과 실천적 대안이 문 대통령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경제보좌관이야말로 대통령의 경제 철학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받쳐주는 경제 책사다. 책사의 몰락은 철학의 빈곤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김 전 보좌관을 신속히 정리한 것은 현명했다. 28일 문제의 대한상의 강연에 참석했던 재계의 A 씨는 “김현철의 말을 들으면서 절망감이 들었다”고 했다. 단지 “50~60대는 할 일 없다고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 “한국 학생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 이러지 말고 아세안 가보면 ‘해피 조선’이다”라는 말실수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진영을 나누고,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국민에 떠넘기며 자신만 옳다는 완고한 이념 좌파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A 씨는 재계에선 지금까지 “대통령이 하루는 ‘맘껏 투자하라’ 했다가 다음 날 ‘탈·위법을 뿌리 뽑겠다’며 경제·기업에 대해 오락가락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청와대의 이념 과잉 참모들이 하루 대통령의 귀를 잡으면, 다음날 김현철 보좌관 같은 친기업 참모가 대통령 입을 바로 잡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라고 좋게 해석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현철 보좌관이 하는 얘기를 직접 듣고 이런 생각을 접게 됐다고 했다. A 씨는 “그날 강연으로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더는 문재인 청와대엔 바랄 게 없다는 사실”이라며 “각자도생만이 살길임을 다시 확인했다”고 했다.
 
나는 문 대통령이 김현철 전 보좌관을 ‘읍참마속’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내딛기 바란다. 경제 철학의 전환이다. 김현철과 함께 소득주도 성장도, J 커브도 함께 청와대 밖으로 내보내기 바란다. 모든 국정 철학이 그렇듯, 경제 철학도 세 가지가 맞물려야 돌아간다. 사람, 정책, 집행이다. 그중 제일은 사람이다. 사람이 없으면 집행이 안 되고 어떤 정책이든 온전히 굴러갈 수 없다. 원작자 홍장표 전 경제수석과 옹호자 장하성 전 정책실장에 이어, 전도사 김현철 전 보좌관까지 소득주도성장 3인방이 모두 물러났다. 주인 없는 경제 철학을 고집할 이유도, 명분도 사라졌다. 이참에 소득주도성장은 폐기하는 게 옳다.
 
근본 없는 어정쩡한 작명 뒤에 숨지 말고 새 이름으로 새 출발 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 정의와 공정을 내세운 정부니 분배정의, 공정분배 이렇게 바꾸면 어떤가. 아예 공정분배, 공정성장, 공정경제의 ‘공정 3축’으로 경제 철학을 전면 리모델링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돌이킬 수 없거나 고쳐 쓸 수 없는 것은 없다. 고집하면 소득주도성장과 ‘기승전 최저임금’만 남아 두고두고 질타와 조롱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통령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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