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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퍼스펙티브] 북·미와 북·중 협곡 빠진 비핵화 탈출로 찾아야

중앙일보 2019.01.31 00:07 종합 26면 지면보기
비핵화 해법 
우여곡절 끝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전망이 보이자 미국의 이름 있는 보수 논객들이 일제 사격하듯 회담 전망에 재를 뿌리는 회의론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 보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크 그린은 무모하다 싶은 베팅을 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다”(중앙일보 1월 19일 자). 변화무쌍한 북·미 관계와 트럼프의 충동적 성격을 생각하면 정상회담은 열려야 열리는 것이지만, 그린 같은 진지한 전문가가 그렇게 단정적으로 장담할 일은 아니다.
 

미국은 어려운 비핵화 대신
ICBM 제거로 정책 수정 가능
중국은 한반도 이해당사자로
비핵화 협상에 적극 참여할 듯

한국, 북·미 단독 합의 전망과
북·중 공조라는 협곡에 빠져

문 대통령, 완전한 비핵화만이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임을
북·미에 분명히 밝히고 설득해야

이 연구소의 전문 포털 ‘분계선 넘어(Beyond parallel)’는 지난 23일 느닷없이 평북 운전군의 신오리 미사일 기지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운용하는 20곳의 미사일 기지의 하나인 신오리 기지에는 연대 규모의 노동1호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까지 붙였다. 그러나 신오리 기지는 오래전부터 한·미 군사정보망에 파악되어 활동이 감시받고 있는 대상이다. CSIS는 작년 말에도 한·미 정부가 오래전부터 추적·감시해 온 삭간몰과 영저동 미사일 기지의 실태를 ‘고발’하는 연구보고를 냈다.
 
 
비핵화 협상 회의론 잇달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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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한 국제 콘퍼런스는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론의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과거 핵은 절대 포기 못 한다는 의미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남·북·미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핵 군축 합의로 미봉할 가능성이 크다”(조너선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한의 접근법은 계속 핵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직접 대화로 북한 지도자가 비핵화에 나서도록 한다는 개념의 플랜A는 실패했다. 북한의 선의에 기대지 말고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 정치·경제· 외교·인권 분야에서 엄청난(massive) 제재와 압박을 퍼부어야 한다”(에번스 리비에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훗날로 비핵화를 미루는 문재인 방식은 절대로 비핵화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확실히 보장하는 지름길이다”(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회의에서는 트럼프가 싱가포르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할 가능성,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일방적으로 철수할 가능성,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 변경,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않는 것을 북한에 선물로 줄 가능성도 제기됐다. 회의론이 숙련된 전문가의 눈에 비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든, 트럼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반트럼프 보수 인사들의 방해 공작이든, 회의론은 회의론대로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들의 주장도 모두 개연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북한 핑계로 중국 견제
 
문제는 북한은 이미 보유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는 타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 진단에도 문제가 있다. 사드 철수, 주한미군의 감축과 역할 변경,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단은 인도·태평양전략 차원에서 전개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진단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빙자하여 실제로는 중국 견제용 군사 연습과 무기 체계 첨단화를 진행해 왔다.
 
주한미군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주한 미군 기지의 레이다들은 중국 감시용을 겸한다. 사드 배치를 강행한 미국, 사드를 받아들인 한국에 혹독한 보복을 한 중국의 조치들이 증거다. 지난 17일 발표된 미 국방부의 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상승 단계에서 요격할 레이저 무기를 개발 중이라고 공개했다. 이것도 북한 ICBM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이미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레이저 무기 체계의 한 갈래다.
 
김정은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검승부를 준비하는 트럼프의 주변에는 우군이 없다.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조차도 협상을 사보타주할 기회만 노린다고 트럼프는 의심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발언도 트럼프의 낙관론과 엇박자를 낼 때가 많다. 전통적인 외교·협상 관례를 무시하고,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저돌적으로 독주하는 트럼프가 자초한 환경이다.
 
 
미국, 북한 비핵화 포기?
 
우리의 관심사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미국의 이런 환경에서 만나 무엇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인가다. 작년 6월 싱가포르 이후 후속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사이 미국의 단기적인 협상 목표가 바뀐 듯한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다. CSIS 선임연구원 수리 테미는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라는 표현을 쓴 데 주목한다. “어려운 비핵화 대신 ICBM 제거 쪽으로 정책이 수정되는 것일 수도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도 지난 11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이 미 본토에 대한 북한 미사일 위협만 해결되면 북한과의 합의를 수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의 논평은 폼페이오의 11일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폼페이오는 이집트 방문 중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에 대한 위협을 어떻게 계속 줄여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다.”
 
뉴욕타임스 지난 11일 자 사설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관해서 정반대되는 해석을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대북 제재와 화염과 분노 발언이 김정은의 핵 야망을 버리게 했다고 믿었다. 김정은은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에 가까워지자 트럼프가 제재 완화와 점진적인 비핵화의 교환 협상에 응했다고 믿었다.”
 
 
어정쩡한 북핵 합의는 위험
 
두 견해 모두 사실이다. 미국 주도의 최대 압박과 제재는 북한에 견디기 힘든 경제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 북한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의 피해는 한국과 일본에 국한될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던 미국에 2017년 11월 미국 동부지역까지 사정권에 둔 ICBM 화성-15의 시험 발사 성공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안일한 생각을 박살 냈다. 미국인의 안전 최우선 발언은 트럼프와 품페이오에게는 당연한 말이다.
 
거기다 김정은은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이 싱가포르 공동성명대로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대북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면 북한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북·미 관계가 ‘평창 이전’으로 돌아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상상도 못한 실존적 위기다.
 
여기가 바로 한국이 두 눈 부릅뜨고 경계할 대목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북한의 ICBM을 폐기하고 중·단거리 미사일과 핵무기와 핵물질을 동결하는 수준에서 합의할 가능성이 한층 커진 것이다. 북·미는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위한 협상은 계속한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나 본토가 북한 ICBM의 위협에서 벗어난 미국, 숨통을 조이던 제재가 풀린 북한이 FFVD의 나머지 협상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그 결과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누리고, 한국은 미국을 원망하면서 못 쓰는 핵이지만 핵을 가진 북한과 경제 협력도 하고 문화적·인적 교류를 넓혀가는 울고 싶은 기이한 현상에 빠지게 된다.
 
 
문 대통령, 확실한 비핵화에 나서야
 
북·중 밀착도 불길하다. 김정은과 시진핑은 지난 8일 4차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 정세 관리와 비핵화 과정을 공동으로 연구·조종해 나가는 문제를 논의했다”(조선중앙통신). 이건 사실상 김정은이 시진핑이 쓴 협상 각본에 따라 트럼프와 협상을 한다는 의미다. 시진핑은 김정은에게 약속했다. “중국은 앞으로도 조선 동지들의 믿음직한 후방이며 벗으로서 쌍방의 근본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정세 안정을 위해 적극적·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조선반도의 정세 안정은 이제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시진핑의 올해 북한 방문도 한반도에 중국의 이해 당사국 도장을 확실히 찍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평화체제 전환 다자 협상 구상이 들어있는 것도 중국과의 사전 교감의 산물이라는 의심이 든다. 시진핑은 미국과의 남중국해와 무역 갈등에서 한반도 카드를 들었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세기적 빅딜에서 중국 카드로 무장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문제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과속 질주로 갈등하는 한미동맹과 대조를 이룬다.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적인 한반도 평화의 여정은 이렇게 북·미 단독 합의 전망과 북·중 공조라는 협곡에 빠졌다. 핵·미사일에서 유일한 공조 상대인 일본과는 적대 관계만 쌓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문 대통령이 ‘평창’의 초심으로 돌아가 워싱턴·평양·베이징으로 더 뛰어야 한다. 뛰면서 김정은과 트럼프에게 과거 핵을 포함한 FFVD만이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비핵화 개념임을 분명히 하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이 개념의 틀 안에서 진행되도록 남북, 한·미간 정책 조율을 섬세하고 창의적으로 하라. 일본과는 초계기 논란과 강제징용 재판에 관한 소모적 갈등을 봉인하고, 북·미 핵 협상에 공동 전선을 펴라. 대북 제재 완화 같은 인기 없는 김정은 표 ‘상품’ 세일스맨 역할을 그만하라. 남북 협력이 북미 협상 진전을 너무 앞서가지 않게 하라.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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