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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따라 하는 취미? 늙어서도 할 수 있는 봉사 어떤가

중앙일보 2019.01.30 09:01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5)
한국인의 여가 활용에 대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여가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 말에 복수로 답한 희망 사항을 보니 관광이 71.5%, 취미생활·자기계발이 46.4%, 문화예술관람이 38.5%라고 답했다.
 
얼마 전 어느 기업의 인생후반부를 준비하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나갔다가 여가 활용이라는 강좌를 살펴봤는데 과목이 여행하기와 사진 찍기였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여가 활용에 대한 바람을 충실히 반영한 강좌라고 여긴 바 있다.
 
그러나 살짝 의구심이 든다. 인생후반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여가 활용법에 대해 알려줄 수는 없지만 딱 종목을 국한해 하는 강의가 과연 효과적일까 하는 의구심.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집 떠나기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사진 찍는 방법이 사진 찍는 걸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소용이 있을까? 그야말로 고기 잡는 법이 아니라 고기만을 주는 경우 아닌가?
 
자신의 취미와 장기가 업이 됐고, 그를 통해 화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부부듀엣 '해와 달'의 모습. [사진 한익종]

자신의 취미와 장기가 업이 됐고, 그를 통해 화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부부듀엣 '해와 달'의 모습. [사진 한익종]

 
차라리 여가선용의 중요성과 어떻게 여가를 활용하고, 지금 준비하는 것이 인생후반부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오래전 후배의 지방 사무실을 찾았는데 세고비아 기타가 놓여있었다. 왠 기타냐고 물었더니 은퇴 후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 배우는 중이란다. 그만두라고 했다. 나이 들어 악기를 처음 시작하는 것은 음감과 손 놀임이 떨어져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와 소위 백수(?)가 돼 띵똥거린다면 부인이 좋아할까 하는 이유를 들어서이다.
 
직장생활 할 때 상사가 인생후반부에 골프를 치는 것이 성공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일이라고 했다. 골프를 친다는 것은 경제적 여유와 건강과 친구가 있다는 좋은 증거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 또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 골프만을 즐기는 것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서이다.
 
인생 후반부를 대비한 여가선용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자신이 진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소위 유행에 따라 여가를 즐긴다면 그야말로 유행만 따라가다 말게 된다. 둘째는 지속 가능한 여가 활용이어야 한다. 남들 한다고 나도 한다는 식의 여가 활용은 반짝세일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이 점이 정말 중요한데 은퇴 후, 인생후반부에 여가활동이 곧 주생활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인생후반부는 여가가 일보다 더 많아지니까.
 
다 해 보니 봉사가 여가선용방법으론 최고더라
가족의 시련을 봉사로 승화시킨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가 자신의 책 출판 기념 토크쇼에서 취미인 맥주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가족의 시련을 봉사로 승화시킨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가 자신의 책 출판 기념 토크쇼에서 취미인 맥주에 대해 강의하는 모습. [사진 한익종]

 
여가선용의 종류와 방법에는 끝이 없다. 화천 집에서 가졌던 장애어린이들을 위한 성금 마련 야드 세일을 준비하며 아내에게 이런 말을 건넸었다. “세상에 안 해 본 게 없네.” 창고에서 쏟아져 나오는 내 취미, 기호 물품을 보니 정말 해 볼 것은 다 해본 것 같았다. 그 물품들을 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남들 하는 것, 그때의 유행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예전에도 했고 지금도 하는 것, 그리고 평생의 업과 연관된 여가 활용의 사례는 없나? 있다. 바로 봉사이다. 조금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직장생활 할 때 시간이 허락될 때, 여가가 생길 때 했던 일이 봉사활동이었다. 노력 봉사도 있었고, 기부 봉사도 있었고, 재능기부도 있었다. 봉사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다른 단체에 제공한 경험도 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생활을 보면 모든 여가활동 중에 제일은 봉사활동이라고 확신한다.
 
얼마 전 여행사에 다니는 젊은이가 회사생활과 음악 활동 간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으로 상담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해 준 말은 “진정 음악을 좋아하나, 그렇다면 갈등을 이겨낼 용기도 가져라. 일과 여가활동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갈등은 늘 있는 것. 그 갈등에 괴로워하지 말고 갈등에서 오는 괴로움을 이겨 낼 용기를 가져라”였다.
 
갈등이란 바라는 바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필연적 결과이다. 기대와 현실과는 항상 엄연한 괴리가 있다.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욕심이 없어지지 않는 한 만족이란 없다. 여가 활용에 대한 기대든, 업에 대한 기대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 다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
 
결국은 바람을 줄이거나 욕심을 줄이는 일인데 욕심을 줄이는 데 봉사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봉사가 여가활동이고 봉사가 업이 되는 인생후반부라면 불행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유행을 타지 않는 여가 활용법, 봉사활동
중앙일보가 주최한 더,오래 강연회의 강사들도 봉사활동이 인생후반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서지명 기자

중앙일보가 주최한 더,오래 강연회의 강사들도 봉사활동이 인생후반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서지명 기자

 
그럼 봉사는 유행을 타지 않나? 아니다. 봉사도 유행을 탄다. 그러나 종류와 방법의 문제지 지속성의 문제는 아니다. 봉사활동만큼 여가 활용에서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도 없다. 직장생활에서 다져진 봉사에 대한 생각과 여가생활로서의 활동은 이제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내게 삶이 됐고, 미래의 업으로 돼 가고 있다. 시간만 나면 걷기를 좋아했고, 봉사했던 나의 과거 여가선용 법은 지금의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봉사를 통해 (무급봉사직이지만) 푸르메재단 기획위원이라는 직을 가졌고 칼럼도 쓰게 됐고, 강의도 하게 됐다. 이보다 좋은 여가선용의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여가가 생기면 무얼 할까 고민이 되는가? 주저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봉사하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가사가 있지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여가 활용, 바로 봉사이다. 모든 여가 활용법 중 제일은 봉사활동이다.
 
일본 제일의 자산가이자 실질 납세액 1위인 사이토 히토리가 한 말을 되새겨 보자. “남들이 성공한 경영사례를 따라 하느니 차라리 덕을 쌓아라.”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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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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