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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YS 지시로 IAEA 사무총장 도전…‘보이지 않는 손’에 막혀 좌절

중앙일보 2019.01.29 01:00 종합 16면 지면보기
“김영삼 대통령께서 정 장관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 입후보하라고 하십니다.”

이수성 총리의 통보였다. 이에 따라 나는 1996년 8월 7일 과학기술처 장관에서 물러나 대한민국 원자력 대사와 원자력 위원 자격으로 IAEA 사무총장 선거에 나섰다. 과기처 차관을 지낸 구본영 청와대 경제수석이 후임을 맡았다. 
IAEA는 유엔(UN) 다음으로 주목받는 국제기구다. 당시 북핵 문제가 떠올라 IAEA 사무총장은 긴밀한 한·미 공조가 필수적인 자리였다. 미국도 당연히 큰 관심을 보였다. 젊었을 때 평화봉사단원으로 연세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제임스 레이니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어느 미 외교관보다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했다. 그는 나의 입후보를 환영했고 도와주려 했다.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1993년 11월 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레이니 대사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첫해인 93년 10월 부임해 5년차인 97년 2월까지 재임했다. [중앙포토]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왼쪽)가 1993년 11월 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레이니 대사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첫해인 93년 10월 부임해 5년차인 97년 2월까지 재임했다. [중앙포토]

나중에 알았지만, 미 국무부에선 내 입후보에 대해 양론이 있었다. 외교·과학기술 실무자들은 환영했지만, 정보 계통에선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 이유는 IAEA 사무총장은 예민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 국제기밀이 한국 정부에 알려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IAEA는 핵무기 비확산을 맡아 유엔보다 더욱 예민한 국제기구다. 
1990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 참석한 정근모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장관 겸 IAEA 총회 의장(오른쪽)이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과 만나고 있다. 블릭스 사무총장은 96년 후임 사무총장으로 입후보 의사를 밝힌 정근모 박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1990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에 참석한 정근모 대한민국 과학기술처 장관 겸 IAEA 총회 의장(오른쪽)이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과 만나고 있다. 블릭스 사무총장은 96년 후임 사무총장으로 입후보 의사를 밝힌 정근모 박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IAEA 관련 한국 주무부서인 외무부는 미 정보기관의 우려에 무게를 뒀던 모양이다. 레이니 대사를 포함한 한미 외교 책임자들은 내가 이런 문제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IAEA 총회 의장을 맡았을 때 함께 일했던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조언했다. 
“한국 정부가 정 박사의 공식 후보지명서를 보내면 1차 투표에서 무난히 당선할 것이요. 하지만 미국과 한국 내의 반대 의견도 상당하니 유념하세요.”
1차 투표 입후보자는 나 외에 스위스의 원자력 외교전문 교수와 이집트의 주영대사가 있었다. 후보지명 시한을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이 총리가 연락했다. 
“대통령께서 정 장관의 IAEA 사무총장 입후보를 승인했으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세요.”
하지만 외무부는 기한까지 지명서류를 IAEA에 제출하지 않아 입후보가 좌절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레이니 대사가 나를 오찬에 초대했다.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김 대통령의 결정에 반해 입후보 지명서류 제출을 보류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나는 대사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 . [중앙포토]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국대사 . [중앙포토]

레이니는 온화한 성품이었지만 이 일엔 단호했다. 끝까지 지지해준 데 감사한다. 그는 얼마 뒤 조지아주 애틀랜타 소재 에모리대 총장을 맡아 대학을 미국 남부의 명문으로 키웠다. 구한말 개화파 윤치호(1865~1945)가 1891~93년 유학했던 유서 깊은 대학이다. 
레이니 대사의 한국 사랑과 개인적으로 내게 보내준 신뢰는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한국 해비타트 초대 이사장으로 처음 의정부에 주택 세 채를 지었을 때 때 레이니 대사도 참석해 감사기도를 올려줬다. 이때 그는 자신의 장모가 한국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보낸 헌금이라며 250달러 수표를 전한 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남기고 싶은 이야기’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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