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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말뿐인 데이터고속도로, 이제라도 구축 서둘러야

중앙일보 2019.01.28 01:05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1. 중국 최대 온라인 보험사 중안보험은 혈당에 따라 보험료를 조절하는 탕샤오베이(糖小貝)라는 보험 상품을 판다.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면 스마트폰처럼 생긴 혈당측정기로 혈당을 측정해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으로 검사 결과를 공유한다. 혈당에 이상이 생기면 즉각 병원에 알리고 의사는 원격 진료해 처방한다. 운동과 식사 조절로 혈당이 떨어지면 보험료가 내려가고, 반대로 혈당이 높아지면 보험료가 올라간다. 중안보험은 2017년 9월 홍콩 증시에 상장해 1조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우버 등은 빅데이터 활용해 고속 성장중인데
한국은 과도한 개인정보 규제에 스타트업 비명

#2. 미국 P2P(개인 간 거래) 대출업체 렌도는 통신사 데이터와 SNS 활동 등을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주로 낮에 통화하거나 매일 일정한 시간에 e메일을 확인하는 사람은 경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신용 점수를 후하게 준다. 금융 거래 실적이 적어 대출이 안 되거나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던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대출을 받고, 금융회사는 새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들 사업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제약이 많다. 개인 정보 보호를 이유로 의료 정보나 통신 기록 등을 공유하는 걸 금지하기 때문이다. 우버·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스타트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속 성장하는데, 한국은 데이터 공유를 금지해 세계적 스타트업이 탄생하기 힘들다.
 
빅데이터는 ‘21세기 원유’로 불린다. 인공지능(AI) 학습은 물론 스마트시티·자율주행차를 구현하려면 데이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중국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금융·보험·의료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위키본에 따르면 세계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8억 달러(약 45조7000억원)에서 2026년 922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은 빅데이터 분야 후진국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빅데이터 사용 및 분석’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31위에 그쳤다. 중국(12위)은 물론, 인도네시아(29위)에도 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기업의 빅데이터 분석 활용 비율은 3.6%로 주요국 중 꼴찌였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개인 정보 규제를 풀어야 빅데이터 산업이 꽃필 수 있다고 말한다. 황창규 KT 사장은 지난 15일 청와대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개인 정보 보호 규제를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한국의 갈라파고스적 데이터 쇄국주의는 구한말 쇄국주의와 비슷하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반드시 혁파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내걸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산업화 시대의 경부고속도로처럼 데이터 경제 시대를 맞아 데이터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개인 정보 보호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전이 없다. 가장 큰 원인은 정부 부처와 국회가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이용을 활성화하는 목적으로 가명 정보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데이터 규제 혁신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은 지난해 말 국회에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한국의 공공 데이터는 90%가량이 보안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 영국은 공공 데이터 94%를 클라우드에서 공개한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개인 정보 규제 완화에 반대한다. 개인 정보 수집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고, 개인 정보 유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는 더 엄격히 보호하고,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데이터만 유통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시민단체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는 데이터 규제 혁신 3법이 국회에서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말뿐인 혁신성장이 되지 않으려면 과도한 개인 정보 규제를 풀어 데이터고속도로 구축에 속히 나서야 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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